검찰 "朴대통령 대면조사 다시 추진… 물러서지 않겠다"

요즘 검찰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고 한다. 검찰은 20일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등을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이들과 공모(共謀)한 피의자로 입건했다.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만든 것에 대해 검찰 조직 전체가 느끼는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김수남 검찰총장의 고민이 크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검 간부는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검찰총장이 사실상 수사팀장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주 최씨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혐의를 어느 정도 담을 것인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공소장에 일단 대통령 혐의는 최소한으로 담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일부 검찰 간부는 대통령에 대한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계좌 추적, 출국 금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 총장은 이런 강경론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정치적 논란만 키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신 김 총장은 최씨 등의 공소장에 "조사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담으라"고 지시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김 총장은 휴일인 20일 오전 대검에 출근해 집무실에서 TV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지켜봤다.

검찰은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공격한 것에 대해서는 직접 대응을 삼갔다. 최순실씨 사건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21일 "(청와대와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에) 답하지 않겠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는 게 검찰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거 판단을 대충 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등의 압박에 물러설 뜻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조만간 대통령 대면(對面)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박 대통령의 변호인은 "앞으로 검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대통령 대면 조사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인력도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특별검사가 임명돼 이 사건 전체를 넘겨줄 때까지 검찰이 할 수 있는 수사는 모두 다 하겠다는 뜻이다.

검찰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들을 상대로 아직 조사할 게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검찰은 전날에도 대기업이 관련된 뇌물죄 부분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최씨에게 적용된 직권남용·강요 혐의 이외에 다른 죄명(罪名)이 추가될지에 대해 "대통령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어서 충분히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작년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母女)가 세운 스포츠 컨설팅 업체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송금한 것과 관련해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준 것인지를 수사 중이다. 최씨의 공소장에 담지는 않았지만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계속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박 대통령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검찰이 겉으론 청와대에 대한 정면 대응을 피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다. 검찰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기업에) 돈을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협박이 아닌가"라며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 좀 내놓으시오' 하면 감사하게 내놓느냐"는 말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소환 통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어이없고, 황당하다"며 "지금 청와대가 과거 야당 정치인들이 '표적 수사' '정치 검사' 운운하면서 조사를 거부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박 대통령의 해명은 범의(犯意)는 부인하면서도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이라며 "인사 개입이나 광고 일감 민원을 들어준 것을 부인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