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억울해요" 소년의 절규는 5번이나 외면당했다

경찰의 강압 수사로 죄 없는 16세 소년이 살인범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국가 사법 시스템이 오작동한 대표적인 사례다. 재심 재판에서 법원의 무죄 결정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는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사법 시스템이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말했다. 본지가 이 사건을 취재해 재구성한 결과 사법 당국은 최소 5차례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놓쳤다.

① 강압 수사, 제대로 검토안해

지난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쯤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 유모(당시 42세)씨가 흉기에 12차례 찔려 숨졌다. 익산경찰서가 지목한 용의자는 당시 16세이던 최모(32)씨였다. 최씨는 다방에서 숙식을 하며 오토바이로 커피를 나르던 이른바 '다방 꼬마'로, 당시 현장 근처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걸 봤다"고 경찰에 신고한 목격자였다.

경찰의 수사 보고서는 엉터리였다. '8월 16일에 최씨가 일하던 다방으로부터 흉기를 압수했다'는 조서를 쓰고도 이틀 뒤인 8월 18일엔 최씨에게 "흉기를 어디에 숨겼느냐"고 묻는 식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수사 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최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경찰 의견 그대로 재판에 넘겼다.

② 범행 否認했더니 최고형 선고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던 최씨는 법원에서 진술을 바꿨다. "경찰이잠도 재우지 않고 구타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최씨에게 소년범 법정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했다. '범행 부인'에 따른 일종의 괘씸죄였다. 결국 최씨는 2심에서 형량을 줄이기 위해 범행을 그대로 인정했다. 2심 재판부가 오히려 사건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정말 네가 한 게 맞느냐"고 수차례 물었지만 최씨는 "맞는다"며 범행을 인정했다. 최씨는 대법원에 상고(上告)하지 않아 10년형이 확정됐다.

③ 용의자 잡고도 풀어준 검찰

2003년 6월. 군산경찰서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김모(35·사건 당시 19세)씨를 체포했다. 물증은 없었지만, 범행 직후 김씨를 숨겨줬다는 친구와 김씨의 동생이 '김씨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택시 기사를 찌른) 흉기에 비계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친구의 집과 가까워 약촌오거리를 범행 장소로 정했다"처럼 진범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진술도 나왔다.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수차례 기각했다. 증거를 찾겠다고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던 김씨는 이후 자백을 뒤집고, 자신을 숨겨준 친구와 함께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김씨는 13년 만인 지난 19일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

④ 인권위 찾아갔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최씨를 돕지 못했다. 전북 지역의 한 시민단체는 '유력 용의자' 김씨가 체포되자 최씨에 대한 '긴급구제' 조치를 인권위에 신청했다. 경찰의 강압 수사 정황이 드러났으니 최씨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2004년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는 '진정 원인이 된 사건이 1년을 경과해 조사할 수 없다'라는 기계적인 이유를 들었다.

⑤ 형식적인 대질신문

검찰은 이 사건을 마무리 짓기 직전인 2006년 6월, 최씨와 김씨를 불러 대질신문을 했다. 최씨와 김씨 모두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한쪽 말만 믿었다. "억울하다"는 최씨에게 검사는 "억울하면 상고하지 왜 안 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반면 "(관심을 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당해보라는 차원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김씨에게 검사는 "바라는 대로 부모님 사랑은 받았나" "어떤 관심을 받았나"라고 물었다. 의미 없는 대질이 끝나고 결국 최씨는 다시 교도소로, 김씨는 사회로 향했다. 검찰은 이렇게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마저 허망하게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