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중독 탈출한 선배 일침에… 술 끊는 酒黨들

"'오늘 딱 하루만 더 마시자'는 생각을 버리세요. '오늘 하루만 안 마시자'고 생각하세요. '한 잔만 더 마시자'가 아니라 '한 잔도 마시지 말자'고 생각하세요."

지난 15일 인천 연수새누리 사회 복귀 시설. 양복 차림의 50대 남성이 이 시설에서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는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했다. 본인도 알코올중독에 빠졌다가 만 11년간 아예 술을 끊은 알코올중독 회복자 이창순(57)씨였다. "술을 끊었더니 집 나갔던 아내가 작년 5월 되돌아와 다시 가정을 꾸렸습니다. 간경화도 완쾌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세를 벗어나 작은 집도 마련했습니다." 수강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알코올 회복자 서포터즈'가 나선다

보건복지부는 23일 "전국 50개소 중독관리통합센터마다 '알코올 회복자 서포터즈'를 2명씩 배치해 100명의 회복자가 알코올중독자 자조(自助) 모임과 재활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처럼 알코올중독이라는 '수렁'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다른 알코올중독자를 돕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100명의 서포터즈 단원으로 행사에 참석한 이씨는 "한때 술에 지독하게 빠져 살았다"고 했다. 열여섯 살 때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양조장 대리점에서 일하다 술에 빠지기 시작해 "20대 땐 술친구 셋이 모여 소주 15병을 매일 마실 정도였다"고 한다. 술은 점점 그를 잠식해갔다. 직장 생활하면서 회식 자리에서 왕창 술 마시고 해장한다며 '해장술'을 또 마시는 식이었다.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아내에게 손찌검하고, 자녀의 학교 공과금 낼 돈도 술값에 썼다.

그랬던 그가 바뀐 건 2005년 9월 인천알코올상담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알코올중독자란 점을 인정하고 '술 때문에 내 인생은 물론 내 가정과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가 세운 원칙은 '하루만 안 마시자'였다. 그렇게 버틴 지 11년을 넘겼다. 중독에서 빠져나온 그는 2009년부터 인천 사회 복귀 시설에서 재활 활동 보조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알코올중독자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게 그의 주(主) 업무다.

그의 강의를 듣는 알코올중독자들은 "'소주 대신 (약한) 막걸리 마시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라'는 식의 조언 하나하나가 귀에 콕 박힌다"고 했다. 이날 시설에서 만난 김현석(가명·46)씨는 "알코올중독으로 일주일에 소주 150병을 마시던 때가 있었다. 정신병원에 가도 '술 마시면 간경화에 걸리고 알코올성 치매도 걸린다'는 식으로만 말해 (술 끊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잘 안 되더라"면서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이해 못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다가 이창순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면서 11개월째 술을 끊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알코올중독 폐해 심각"

정부가 '알코올 회복자 서포터즈' 등 알코올중독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과도한 음주로 인한 폐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의료비나 생산성 손실액 등 사회적 비용이 연간 9조4000억원에 이르고, 2015년 기준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13명(연간 4746명)에 이른다. 음주 상태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사건이 연간 2만건이 넘고, 음주 운전 사고도 최근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한 해 4만2772건(2014년 기준) 발생한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교수(중독포럼 상임이사)는 "알코올중독은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알코올중독 회복자를 통한 치유 프로그램 등 '술과의 싸움'을 좀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