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자서전, 2부도 써보고 싶어"

고백은 간혹 부끄러운 것이다. "딸의 권유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철우씨와의 첫 만남은 설레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미국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2014년 귀국한 김정현(62)씨가 자서전을 읽어나갔다. 철우씨와의 사랑은 결국 오해와 다툼 끝에 허물어졌다. "상대방의 주변을 살펴야 사랑할 수 있고, 내 감정에 책임지지 않으면 불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백이 마음을 정화한다.

24일 오전 서울 강남도서관에서 40대 이상 중장년 15명의 자서전('세상을 바꾸는 자서전 쓰기')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도서관협회·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2016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일환으로 전국 12개 도서관에서 지난 5월부터 열린 수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오향례 사서는 "인생의 전환점에 선 이들의 과거 반추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인문학 수업이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모임은 지난 6월부터 매주 목요일, 2시간씩 20회 동안 이어졌다. 수업은 연상법 설문지(영·유아기~최근)를 통해 과거를 회고하고, 서술하고, 공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강의를 맡은 민경호(49)씨는 "자서전은 자아 성찰의 글쓰기"라며 "나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이 담긴 책을 손에 꼭 쥔 이들은 돌아가면서 자서전을 한 쪽씩 읽었다. 최고령 이재은(77)씨는 "작년에 중학교 동창이 자서전을 낸 걸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워낙 옛날 일이라 떠올리기 힘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유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한 장기연(65)씨는 "자서전을 쓸 각오로 일생을 살아간다면 절대 이상한 짓 못 한다.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했지만, 훗날 보면 그것마저 추억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자존감 향상 강의를 다니고 있는 진소희(51)씨는 이번 자서전에 '어머니의 자서전'을 실었다. 자서전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 6남매·가족 고맙고 사랑한다'로 끝난다. "어머니 75년 인생을 살피는 과정이 곧 나를 되짚어보는 일이었다"며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오래 얘기하고 사진도 뒤적이는 게 행복했다"고 말했다.

자서전은 끝나지 않았다. 참석자 전원이 "앞으로도 인생을 기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재은씨는 "이번엔 1부에 해당하는 40대까지의 일을 썼는데, 2부를 쓰고 싶다. 문장도 재밌게 해서 읽는 맛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장기연씨는 이미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흙수저'도 없이 태어나 고졸 검정고시만 세 번 떨어지면서도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두 번째 자서전이 언제 발간될진 모르지만 손자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힘들 때 참고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