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단 한 벌뿐인 양복"… 2030, 맞춤의 멋을 입다

"슈트는 현대 신사들의 갑옷이다."

'영국 맞춤 양복의 끝판왕'으로 불린 영화 '킹스맨'(2015). 별 볼 일 없는 '루저' 에그시 언윈(태론 애거튼)이 진정한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옷차림으로 구별된다. 뒷골목 캐주얼 스타일에서 완벽한 '비스포크(bespoke·100% 맞춤)' 정장 차림으로 바뀐다.

최근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주말극 1위를 지키고 있는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역시 '비스포크' 재단사들의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스승님은 양복이 아니라 인생을 짓고 있다." "진심을 다해 만든 양복은 사람의 겉모습만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다" 같은 대사가 회자된다.

1980년대 이후 '대세'가 된 기성복에 설 자리를 잃어갔던 맞춤 양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최근 들어선 예능 소재로까지 인기를 끌며 20~30대의 관심도 받고 있다. 재단사도 2대·3대로 이어지며 세대교체 중. '장미라사' '세기 테일러' 등 전통 명가(名家) 외에도 해외에서 실력을 다진 젊은 재단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이탈리아 '키톤' 브랜드 출신, 스타들이 단골인 30대 재단사도

한 명의 재단사가 슈트 한 벌을 전부 제작하는 비스포크 방식을 택하는 곳은 기본 100만원에서 200만~300만원대가 넘기도 한다. 비싼 가격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 하지만 옷 마니아들이나, 예복용으로 맞춤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2대째 대를 잇는 '비앤테일러'의 박창우 이사는 "과거엔 주로 단골 장사였지만 최근 10명 중 5명은 새롭게 찾아온 고객일 정도로 비스포크 방식에 관심이 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전했다. 클래식 양복 커뮤니티(cafe.naver.com/cabianco)를 운영하고 있는 이한씨는 "일본 매거진 'MEN's EX(멘즈엑스)'나 '레옹' 같은 전문지를 챙겨 보는 이들도 늘었다"며 "몇 달치 월급을 모아서라도 나만의 '인생 슈트'를 장만하겠다는 의견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의 '레리치'는 모던한 한국적 비스포크라는 평가다. '사르토리아 준'의 전병하 대표는 이탈리아 최고급 양복으로 꼽히는 키톤(Kiton)의 대표 재단사 출신. 한남동의 '테일러블' 곽호빈 대표는 대기업 오너와 국내 스타들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몸에 맞되 '앞으로나란히' 할 수 있어야

비스포크 장인들은 재단사에게만 무조건 맡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가봉할 때 A4 용지 1장 정도 분량의 '작업 지시서'를 꼼꼼히 써야 한다. 원단을 손목 쪽에 올려 느낌을 맞춰보고 버튼이나 품 등을 재단사와 길게 상의하는 게 좋다. 허벅지 너비나 허리 라인 같이 전반적인 스타일을 정확히 이야기해주고 소매통, 길이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재단사에게 맡기면 편하다. '앞으로나란히' 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 작업 지시서는 옷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주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국맞춤양복협회 한광수 국장은 "너무 저렴한 건 가봉도 제대로 안 하고, 기존에 있는 패턴에 품이나 길이 정도만 '수선'하고 맞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5~6년 전 '30만원에 두 벌 맞춤'이라며 화제가 됐던 맞춤 방식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한 국장은 또 "팔·몸판·라펠(깃) 등을 분업화해서 공장식으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등 고급 원단을 쓰면서도 70만~80만원대의 가격대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지만 서로 상호만 다를 뿐 만듦새가 비슷하다는 평도 있다.

패션 평론가 이헌씨는 "맞춤이 좋긴 하지만 가격이 부담되거나 몸이 표준 체형에 가깝다면 50만~8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메멘토모리'나 '두에시뇨리' 같이 고급 원단을 쓴 기성복을 추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