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네 살배기에 8개 국어 교육… 괜찮을까요?

"캔 유 두 잇(Can you do it)?" "후이 부 후이(会不会)?" "프 튀 르 페르(Peux-tu le faire)?"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에서 네 살배기 아이 3명이 동요에 맞춰 '너는 할 수 있니?'라는 뜻을 영어·중국어·프랑스어로 반복해 불렀다. 이 아이들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중국어·스페인어·독일어·일본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총 8개 언어의 기본적인 표현을 배우는 중이었다. 이 아파트에 사는 김지영(35)씨가 지난달부터 딸(4)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세 번씩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학습법을 참고하면 언어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손쉽게 여러 언어의 기초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3~5세 아이를 둔 엄마들 사이에 아이에게 여러 개의 외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이른바 '다(多)개국어 학습법'이 유행하고 있다. 별도의 선생님을 두는 게 아니라 엄마들 스스로 언어를 가르친다. 시중에서 스페인어·러시아어 등으로 된 유아용 언어 학습 교재를 산 뒤 설명서나 인터넷에 올라온 교육법을 참고해 커리큘럼을 짜는 식이다. 이런 교재엔 쉬운 단어나 인사말·감정 표현 같은 기본 회화가 각국 언어로 소개돼 있다. 원어민 발음이 녹음된 음원 CD와 DVD도 딸려 있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음원을 들려주거나 영상을 보여주며 반복해 따라 하도록 지도한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김희경(36)씨는 "엄마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칠 순 없고 아이에게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 들려주며 통째로 외우게 한다"면서 "이를 통해 아이가 여러 언어를 익숙하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중에는 이런 유아용 언어 교재가 10여종 팔리고 있다. 대개 한 세트에 10만원 안팎으로, 여러 언어를 한꺼번에 가르치려면 교재 값만 60만~70만원 정도 든다. 비용 부담이 있다 보니 아예 한 권으로 여러 언어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는 교재를 출판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 업체는 자사(自社) 교재를 활용한 학습 진도표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도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 수가 7만7000여명에 달한다.

엄마들이 이처럼 여러 외국어를 조기 교육하는 까닭은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는 유아기에 여러 가지 언어를 익혀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학습법이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유대인들의 교육법이라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얻게 됐다. 다개국어 교재·교구 등을 팔고 있는 출판사는 유대인 교육법을 인용해 "유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히브리어·영어·헝가리어·프랑스어·이디시어를 배우며 다개국어에 목숨을 건다"고 홍보하고 있다. 5년 넘게 다개국어 학습법을 강조해 온 최비결 로드넷 다개국어 대안학교장은 "어려서 여러 언어를 접하면 외국어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외국인 울렁증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아에게 여러 개의 언어를 가르치는 게 별 효과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작년 만 5세, 초등학교 3학년, 성인(대학생) 등 74명을 대상으로 중국어 교육 효과를 연구 분석한 결과, 만 5세의 교육 효과가 제일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 김은영 박사는 "유아들에게 여러 가지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특별히 더 효과가 있다는 속설이 맞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모국어 능력 발달에 방해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