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탔어요, 다…" 대구 서문시장, 11년만에 또 큰불

대구에서 가장 크고, 영남권에서도 최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서문시장(중구 대신동)에서 30일 새벽 큰불이 발생했다. 이 시장 4지구(연면적 1만5386㎡)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에 있는 679개 점포가 모두 불에 탔다. 이는 서문시장 전체(4개 지구·동산상가·건해산물상가)에 입주한 4080개 점포 중 16.7%에 해당한다. 경찰은 LP가스 폭발 등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4지구는 의류·원단·침구류 등 가연성 제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대부분이라 소방당국이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상인들이 겨울용 제품을 대거 구입해 판매를 하는 시기라, 재산 피해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경비원 2명은 화재 직후 대피해 민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관 2명이 다쳤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화재

서문시장 화재는 30일 오전 2시 8분쯤 일어났다. 최초 신고자인 서문시장의 한 야간 경비원은 "오전 2시 조금 넘어 바람을 쐬려고 바깥을 보니 4지구 1층에서 연기와 함께 불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이 불은 4지구 건물 전체로 번졌다. 철근 콘크리트 형태인 이 건물은 1976년 지어졌다. 679개 입주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대구시 소방본부는 소방차량 100여 대와 소방 인력 870여 명을 동원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날이 밝자 소방헬기 2대도 동원했다. 그러나 의류·침구류 등 가연성 제품에 불이 옮겨가면서 불길이 급속히 번졌다. 제품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로 소방관들이 상가에 진입하는 데 애를 먹었다. 4지구의 계단 일부가 무너져 내려 진화 작업이 더욱 더뎌졌다. 화재 진압을 위해 4지구 건물에 들어갔던 장모(47) 소방위는 2층 높이에서 추락해 허리와 다리 등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최모(36) 소방사도 손목과 발목 등에 찰과상을 입었다. 소방 당국은 "화재가 발생하자 건물 스프링클러를 통해 소방 용수 47t이 분사됐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30일 오후 현재 큰불은 진압됐지만 불이 완전히 꺼지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소방 당국은 예상했다.

◇수백억원대 재산 피해 날 듯

지난 2005년 12월 서문시장 2지구에 화재가 발생해 1190여 개 점포가 전소했을 당시 재산 피해액이 689억원이었다. 이번 화재도 피해 규모는 비슷할 전망이다.

상인들은 화재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현장 접근이 어렵자 발만 동동 굴렀다. 서문시장에서 50년간 숙녀복을 팔았다는 4지구 상인 김모(83)씨는 "억장이 무너진다. 겨울 대목을 맞아 옷을 대량 사들였는데 불이 나는 바람에 몽땅 태워 버렸다"며 망연자실했다. 최근 2억원어치 한복 원단을 들여 왔다는 상인 이모(60)씨는 "보험도 들지 않았는데 불로 인해 제품이 몽땅 타버렸다. 이 일을 어쩌나…" 하며 주저앉았다. 화재 규모가 크고 피해가 심해 4지구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상황도 예상되고 있다. 4지구는 동부화재에 단체보험료 78억원에 가입돼 있다.

◇안전처 "국가 재난지역 선포 검토"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 당시 평양장, 강경장(충남 논산)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혔으며, 현재에도 대구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통시장이다. 각종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현재 1·2·4·5지구와 동산상가, 건해산물상가 등 6개 지구에 4080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다. 서문시장은 작년 4월 개통한 대구도시철도 3호선으로 연결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올 6월엔 야시장(夜市場)까지 개장하면서 고객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였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서문시장 상권이 침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이날 오전 화재 현장을 찾아 "국가재난지역 선포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