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非朴 '탄핵 반대'로 돌아서… 200명 확보 아슬아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자신의 퇴진 문제를 국회 결정에 넘기겠다고 발표한 이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해온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의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여야(與野) 합의를 통한 '질서 있는 퇴진'이 가능하다면 탄핵에 앞서 여야 협상을 해야 한다는 흐름이 비박계 내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야(野) 3당 대표가 30일 "퇴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그렇다면 탄핵 표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당 비박계 일부가 '탄핵 대열' 이탈 조짐을 보이면서 야당이 '12월 2일 또는 9일' 처리를 공언해온 탄핵안 가결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40여명이 주축이 된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어 "박 대통령 스스로 사퇴 시한을 내년 4월 말로 제시하도록 촉구한다"며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은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야 3당과 '대통령 탄핵' 추진을 공조해왔다. 모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회의 뒤 "대통령의 3차 담화 발표 이후 탄핵 정족수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처럼 얘기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비상시국회의의 공식 입장과 달리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질서 있는 퇴진이 가능하다면 그 방법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야당이 주장하는 2일 탄핵 표결은 무리고 9일 표결도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가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 적지 않게 나온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추가로 '내년 4월 말 퇴진' 입장까지 표명한다면 정치적 후폭풍 등을 감안해 탄핵(파면)보단 여야 합의를 통한 하야(명예퇴진)를 추진하는 게 낫고, 탄핵 추진 문제는 여야 협상 상황을 지켜보고 다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비주류 측에선 야당을 향해 "성의 있는 자세로 여당과의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도 나왔다. 정병국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방침을 밝힌 만큼 정치권은 12월 9일 탄핵 표결에 앞서 합리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며 "야당은 '닥치고 탄핵' 같은 정치 공세가 아닌 합리적인 시국 수습 방안을 찾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 "야당이 협상을 무조건 거부한다면 탄핵에 동참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강석호 의원도 이날 여야 협상을 거부한 야당에 대해 "자기들(야당)끼리 하면 탄핵이 (가결) 되느냐"며 "무조건 탄핵하겠다고 하면 보수들이 우리한테 등을 돌린다. 그러면 우린 절대 못 따라간다"고 했다.

실제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무조건 탄핵 찬성' 입장을 고수하는 비박계 의원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지난 22일 새누리당 비박계와 중립 성향 의원 6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탄핵안 찬성' 의사를 명확히 밝힌 의원은 29명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확인한 결과 7~8명이 '야당이 협상을 거부한다면 탄핵에 찬성하기 어렵다'거나 '표결 불참을 고민 중'이란 입장을 나타냈다. 여야 협상 여부에 관계없이 탄핵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은 20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야권 성향 의원 171명과 무소속 김용태 의원이 모두 찬성한다 해도 탄핵안 가결에는 최소 새누리당 비주류 28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이날 조사대로라면 탄핵 가결선인 200석에 근소하게 못 미치는 셈이다.

그러나 야당이 여야 협상에 응하지 않은 채 탄핵을 고수하더라도 비박계가 결국엔 탄핵 표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비박계 관계자는 "비박계로선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그 책임이 고스란히 자기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비박계가 앞으로 1주일간 여야 간 대통령 퇴진 문제를 논의하되 그 사이 대통령이 '내년 4월 퇴진'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여야 간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12월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고, 그 이후 다시 하야 문제를 계속 논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