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최순실 디스카운트'… 해외서 "당신들 기업 못 믿겠다"

3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미국·베트남·대만 등 7국에서 온 코트라(KOTRA) 무역관장들로부터 '수출 정보'를 듣기 위해 250여 기업인이 몰렸다. 참석자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최순실 사태'의 후폭풍. 이종건 코트라 워싱턴무역관장은 "앞으로 한국 기업이 공개하는 매출이나 순이익 같은 각종 기업 정보를 100% 믿을 수 있겠느냐는 보도가 미국 현지 언론에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기업은 배당이나 투자는 하지 않고, (권력층에게) 뒷돈을 주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윤원석 코트라 정보통상지원본부장은 "외신에 국내 주요 그룹의 총수가 소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한국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미지 타격이 수출 감소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국내 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 시달리고 있다. 원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핵(北核)으로 한국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것처럼, 국가 차원의 문제로 기업 평가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번엔 '최순실 사태'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기업 총수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뇌물죄 적용 가능성마저 거론되면서 한국 기업이 해외 무대에서 과도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11월 들어 지난 29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1조756억원에 이른다. 5대 그룹 관계자는 "한국이 '최순실 디스카운트'에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해외 바이어·투자자 "한국 기업 괜찮은가" 문의 잇따라 … 총수 긴급 해외 출장에 나서기도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동(中東) 담당 A임원은 며칠 전 현지 딜러(판매사)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당신 회사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데, 최근 출시된 신차가 차질 없이 공급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A임원은 "다른 지역 딜러들도 이번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해 판매가 줄어들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건설 수주전에 뛰어든 건설사 관계자는 "동남아 쪽 발주처가 얼마 전 사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코리아 스캔들'이라는 말을 꺼냈다"며 "우리 회사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납품 계약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 지분을 가진 '글로벌 펀드'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신규 투자나 새해 사업계획 수립이 문제 없이 진행되느냐'고 묻는 투자자들 때문에 난감하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어 특검, 국정조사가 예정되면서 기업 총수들은 해외 출장 일정을 앞당기기도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주 중동 출장에 이어 이번 주에는 예정에 없던 중국 출장길에 나섰다.

SK 관계자는 "국정조사와 특검이 시작되면 아무런 외부 활동도 못 하기 때문에,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없어 국제 입찰전서도 밀려

재계는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기업들이 뇌물죄로 기소될 경우, 미국 등에서 공공 입찰 제한을 받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 부패 방지법(FCPA)'을 통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 뇌물죄 등으로 처벌받으면 공공 입찰 참여 자체를 배제한다. 당초 미국 기업만 대상으로 했던 이 법이 최근 미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법무법인 다래의 최승재 변호사는 "최근 미국 정부는 해외 부패 방지법의 제재 수위도 높이는 추세"라며 "한국 기업들이 자칫 이번 사태로 높은 수위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 공백이 생기면서 정부가 함께 뛰어야 하는 해외 입찰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의 타격도 우려된다. 한국은 요즘 중국·일본과 약 15조원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고속철도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 시진핑 주석이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나 고속철 수주에 협조를 당부했지만 우리는 이런 '정상(頂上) 경제 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가가 기업 지원을 못 할 망정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