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홍대로, 어르신은 종로 락희거리로

서울의 대표적 노인 쉼터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거리가 '노인 친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는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부터 낙원상가 사이 약 100m 구간을 '락희(樂喜) 거리'로 조성했다고 30일 밝혔다. 행운을 뜻하는 영어 '럭키(Lucky)'와 발음이 비슷하다. 시는 작년 7월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2억6000만원을 들여 이 거리를 꾸몄다. 1960~197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을 상점 등에 도입하고, 이 일대를 찾은 노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했다. 시는 "락희 거리를 매년 900만명이 찾는 일본 도쿄의 대표 노인 거리 '스가모 거리'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노년 이미지 벗고 추억 가득한 거리로

1897년 조성된 탑골공원(사적 제354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이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1920년 '파고다공원'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가 1992년에 탑골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2호), 대원각사비(보물 3호) 같은 문화재도 있다.

하지만 탑골공원 일대는 우울한 노년을 상징하는 더께를 쓴 지 오래다. 매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5000~6000여명의 노인이 이곳으로 모인다. 이들은 종교 단체가 주는 무료 급식을 받거나 인근 식당에서 3000원 정도의 저렴한 식사(국밥 2000원, 막걸리 한 잔 1000원)를 하며 끼니를 때운다. 식사 시간 외에는 하릴없이 탑골공원이나 주변 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노인이 많다. 시 관계자는 "가족의 눈치를 보기 싫어 아침 일찍부터 공원 일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저소득층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젠 노인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시는 낙원상가 맞은 편에 '락희 벽화(가로 8m×세로 16m)'를 만들었다. 1960~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영화 장면들을 담았다. 또 옛 DJ 다방을 연상시키는 '야외 DJ 박스', 과거 학창 시절 입었던 교복 등 소품들을 보여주는 시설도 설치했다.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송해씨의 모습이 그려진 작은 공연 무대도 마련했다.

◇노인 편의 위해 시설·서비스 개선

락희 거리 일대 상점(24곳) 가운데 11곳은 노인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냥한 가게'로 지정됐다. 식당에선 흰 쌀밥 대신 몸에 좋은 현미밥을 준다.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상품 소개 게시물이나 식사 메뉴판 글씨도 크게 만들고, 상품의 실제 사진도 넣었다. 총 25개의 돋보기(스탠드형 15개, 손잡이형 10개)를 비치했다. 시 관계자는 "노인들은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큰 소리 대신 중저음으로 천천히 말하는 상인이 좋다고 한다"며 "상냥한 가게 상인들에게 이런 내용의 친절 교육을 6차례 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은 오후 6시면 문을 닫아 저녁엔 화장실을 쓸 수 없다. 이 때문에 저녁이면 공원 담벼락 등 주변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노인이 많다고 한다. 시는 상냥한 가게 중 하나인 '스타이발관'의 화장실 1곳을 '어르신 우선 화장실'로 만들어 개방한다. 화장실엔 노인이 이용하기 쉽게 'ㄹ'자형 손잡이 등을 설치했다. 노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큰 글자와 단순한 그림으로 구성한 이정표를 탑골공원 정문 좌측 모퉁이와 종로3가역 5번 출구 계단 주변에 설치했다. 거리 내에는 노인들이 지팡이를 둘 수 있는 지팡이 거치대도 4곳(총 40개 거치) 설치했다. 시는 거리에 심장제세동기 1개를 비치했고, 일대 상인들에게 심장제세동기 사용 방법도 주기적으로 교육해 응급 상황에서 노인들을 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