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08 11:24

아픈 게 수상하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아픔이다. 체한 것은 맞는데 약을 이것저것 먹어 보아도 듣지 않는다. 자정을 넘어가자 명치 끝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살아오면서 체한 거야 수도 없이 많았지만, 명치 끝이 아픈 건 두 번째다.

보름전에 명치 끝이 아파 그때도 한밤중에 무척 고생했었다. 명치 끝이 아픈 정도면 그냥 견딜 만한데 등 쪽까지 쭉쭉 뻗치며 아파져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아픔은 명치 끝에서부터 왼쪽 등 쪽으로 휘돌아 산맥 하나를 불끈 솟아오르게 하여 가나 싶더니 다시 솟아오른 산맥은 오른쪽 허리 부분으로 뻗어 내려온다.

손을 목에 넣어 강제로 토를 해본다. 그래 봐야 나오는 건 저녁에 먹은 과일 서너 조각이 전부다. 시간은 이미 새벽으로 치닫고 있는데 남의 수면권을 걱정할 단계를 넘어서는 통증이다. 안마 의자에 앉아 도둑고양이 마냥 등에 집중적으로 안마해 본다. 잠시 멎는 통증, 다시 번져오는 통증은 그 잠시의 평온함도 허락하지 않는 상태로 막힘없이 쭉쭉 뻗어 간다. 악순환이다.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 간다.

차는 나를 싣고 응급실로 향한다. 아들의 옆 얼굴은 겁에 잔뜩 질렸다. 혹여나 운전에 방해될까 싶어 최대한으로 아픔을 참아보지만 나도 모르게 비명이 절로 나온다. 응급실로 들어가 검사하는 내내 진통제란 진통제는 다 맞아도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급기야 마지막 처방이라는 마약 패치까지 붙이고 말았다. 마약이라는 그 독한 성질에 내가 언제 아프게 했느냐고 명치 끝 통증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버리고 만다.

담낭에 돌이 너무 많아 담낭제거수술을 받았다. 내 몸에 칼을 대기는 열세 살 때 맹장수술을 받은 후 처음이다. 하룻밤 자고 나자 통증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 멀쩡한데 수술 부위는 내가 환자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요량인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아파온다. 그 아픔에 억울한 생각이 슬슬 머리를 든다. 그처럼 극도의 통증을 동반하려면 조개처럼 진주가 만들어지던지 아님 다이아몬드라도 하나 만들어지던지 돌이 뭔가, 돌이! 문병 온 사람들에게 이 소리를 했더니 다들 하하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너야말로 이제 쓸개 빠진 여자가 됐네!’ 한다.

“결석이 왜 생기는 걸까요?”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 회진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묻는다.

“모르지요”

우문현답인지 대답이 짧다.

“원인이 확실치 않아요.”

“원인도 모르는데 돌만 제거하면 되지 싹둑 잘라요?”

혀 끝에 감긴 가시를 이때야 느낀 듯 의사 선생이 픽, 웃으며 쳐다본다.

“세상 모든 병이 다 명쾌한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거지요. 맹장처럼 잘라내도 사는 데 지장 없으니 따지지 말고 운동이나 많이 하세요. 그래야 빨리 나아요.”

의사 선생이 나가자마자 간호사가 맑고 투명한 수액을 또 들고 와 교체를 한다. 아직 나에겐 더 많은 것들을 씻어내야만 단순하게 살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단순하게 살아라. 옳은 말이다. 나도 그리 만만한 여자는 아니다. 무엇이든 머리에 들어오면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하다. 알고 나야 후련하다. 그러다 보면 머리는 늘 왜? 로 복잡하다 단순하게 살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 나도 모른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이 있다.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 사리에 맞지 않음을 욕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줏대 없는 사람을 말한다. 설마 내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고 만다.

우리는 왜 사는가? 왜 늙고 병들고 아프다 사라지는가? 왜 우리는 단순하게 살지 못하고 남을 의심하게 추락시키고 싶어 안달하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왜’가 아니고 ‘어떻게’가 되면 안 되는가. 대학병원임에도 내가 입원한 병실에는 TV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시끄러운 시국(時局)을 피해 있었다. 나흘 만에 집에 돌아오니 여전히 ‘왜’가 판을 치고 ‘어떻게'는 실종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의 고질병이다.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가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