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학교 콜린 블랙모어 교수는 세계인구의 평균수명이 120세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주장한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도 노화연구에 15억 달러를 투자하여 ‘죽음을 정복하겠다’고 하였다. 의학 기술의 발달은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에 중대 관심사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 변화의 대응방안으로 자기 변신을 꾀함으로써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20세 시대의 도래가 두렵지 않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필자는 자신의 역할을 바꾸는 '용도 변경'이라는 자기 변신을 후반생의 행동철학으로 삼았다.
가족을 위한 헌신적 인생 1막의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의 전환을 위한 자아실현의 시간으로 변경하였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47세의 조기 퇴직과 금융위기 등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용도 변경을 통하여 사진작가, 강사로 거듭나 지금은 인생이모작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평생 일거리를 만들었던 배경과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른 나이에 ‘용도 폐기’되다
K손해사보험에 입사하여 20년을 다녔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12월 말에 해임되었다. 회사에서 쓸모가, 즉 용도가 없어진 형국이 되었다. 이를 두고 필자는 '용도 폐기'되었다고 이름에 빗대어 우스개처럼 말하곤 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를 그만둔 이듬해 금융위기(IMF)까지 닥쳐 재취업은 힘들었다. 고육지책으로 밥벌이를 위해 겁도 없이 창업했다. 만화방, 부대찌개 음식점이 그것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월 40만 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의 조경관리사로 취업하여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회사 마당을 쓰는 마당쇠 역할도 했다. 일당을 받으려 MBC 드라마 '주몽'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퇴직 후 10년간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지만, 당시엔 창피스럽기조차 하였던 게 사실이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용도 변경’하다
필자의 나이 57세 때 두 친구를 비명횡사로 잃었다. 두 친구 모두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퇴직 후 잡다한 일을 하며 보낸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으나 세월만 쏜살같이 지나가고 내로라할 만한 성취는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두 친구와 같이 허망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장수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후반생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40, 50년이 될지도 모르는 노후의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는 가족을 위해서 자신은 늘 뒷전에 두고 싫은 일도 마다치 않고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은 뒷전으로 미뤄두기 예사였다. 내 인생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살았다. “이제는 인생의 주인공으로 내 인생을 한번 살아보자!” 생업에 밀려 접어둔 하고 싶은 일, 꿈을 이루는 자아실현의 시기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쓰임새를 자신을 위해서 사는 '나(我)용도'로 ‘용도변경’하였다.
그 실천 방안으로 하고 싶었던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은퇴하면 언덕배기에 캔버스를 세우고 수채화를 그리는 꿈을 꾸었으나 유사한 사진으로 바꾸었다. 그림 그리는 붓 대신에 카메라를 잡았다.
60살에 사진 배우다
뒤늦은 나이인 60살, 2010년 7월에 고양시 무료사진 교실에 참여하여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점에서의 환경은 열악했다. 솜씨는 초보자였고 카메라 장비 또한 콤팩트 카메라가 전부였다. 함께 공부한 다른 수강생의 고가 카메라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내 형편대로 살기로 마음먹고 사진 실력 향상에 몰입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개월 후부터 공인 사진작가에 도전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모전에 출품해 입선이나 입상으로 일정 점수를 얻어야 했다. 1년에 28번 응모하였으나 절반이 낙선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재미가 있어서 멈추지 않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1년 9월에 인증을 받아 공인 사진작가가 되었다.
400,000장을 찍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2010년 7월부터 지금까지 6년 4개월을 하루같이 사진에 빠졌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가 무려 40만 장을 헤아린다. 역산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200여 장을 찍어야 하는 숫자다. 파파라치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군부대 시설 근처에서 철조망을 전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다 신고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뒤늦은 나이에 도전하여 좌절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 몰입하고 계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택한 사진이 재미있는 일이어서다.
오늘의 나는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은혜로 이루어졌다. 그 은혜에 보은할 할 때라 여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모든 경험과 지혜를 베풀고 나누는 사회공헌을 위해 또 다른 용도변경, “공(公)용도”를 인생의 최종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며 도전을 멈추지 않으리라. 필자의 소소한 경험담이 같은 길을 가려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