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못가면 알리듯… 노쇼도 미리 알려야 한다는 말에 감동"

지난달 26일 유명 셰프 에드워드 권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프렌치 레스토랑 '랩24'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년 부부가 종업원에게 현금 5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종업원에게 이 부부는 "친구 부부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못 오게 됐다. 미안하다"고 했다. 원래 4명을 예약했는데 2명밖에 못 와서 다른 손님들이 식사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식당 종업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1년 전만 해도 노쇼(No show·예약 부도) 고객에게 항의하면 '어디 손님에게 큰소리치느냐'는 고함이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예약 문화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이연복, 최현석, 에드워드 권 등 유명 셰프 3명을 인터뷰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셰프들이 요리하는 식당도 노쇼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작년 이들이 일하는 식당의 평균 예약 부도 비율은 35%에 달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최근 본지 취재팀이 이들을 다시 인터뷰했더니 3개 식당의 예약 부도 평균 비율은 올해 20%로 줄었다. 셰프들은 "손님들이 '예약을 어기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노쇼 줄자 없어졌던 메뉴도 부활

셰프 이연복씨가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중식당 목란(木蘭)은 수십년 전통의 인기 메뉴였던 '생선 요리'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이 식당은 우럭이나 도미를 튀긴 뒤 굴 소스를 부은 홍소(紅燒) 생선이나 생선찜이 대표 메뉴였다. 신선도가 생명인 이 메뉴는 예약으로만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생선 요리를 주문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손님들 때문에 준비한 음식을 버리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3년 전엔 결국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노쇼 손님이 줄면서 이연복씨는 생선 요리를 다시 메뉴에 추가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주말 일곱 살짜리 어린이를 데리고 온 한 엄마가 아이에게 '유치원에 못 가면 선생님에게 전화해 알리는 것처럼 예약한 식당에 못 가게 되면 미리 알려줘야 한다'고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노쇼 고객에 '부끄러운 줄 알라' 돌직구

최근까지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엘본더테이블' 총괄 셰프로 일했던 최현석씨는 지난해 12월 SNS를 통해 '우리 레스토랑에 오늘 저녁에만 총 16명이 노쇼를 했다. 부끄러운 줄 알라'며 노쇼 고객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최씨가 노쇼 문제를 꺼낸 건 이 문제 때문에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처한 동료들 때문이었다. 실제 서울 용산구에서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 '나오스노바'를 운영하던 카일 리(48)씨는 하루에도 서너 건씩 일어나는 노쇼 때문에 지난 2014년 "한국에서 더 이상 식당을 할 생각이 없다"며 식당 문을 닫기도 했다. 최씨는 지난 1년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쇼는 업주의 생계를 위협한다. 예약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이 식당의 예약 부도 비율은 작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는 "얼마 전 레스토랑을 찾은 한 손님이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말을 하기 민망해서 전화를 안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털어놨다"고 했다.

◇'약속 지켜주면 우리도 보답'

에드워드 권이 운영하는 '랩24'는 노쇼 고객에게 페널티를 주는 대신 예약을 지키는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택했다. 예약을 3회 이상 지킨 고객에게는 VIP카드를 지급했다. 카드를 받은 고객은 매번 식사 값의 10% 할인을 받고, 디저트나 음료 등을 무료로 받았다. 또 모든 예약 고객에게 무료 음료 쿠폰을 주며 "앞으로도 노쇼 근절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쿠폰을 받은 고객 300명 중 예약을 어긴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작년 일주일에 대여섯 건이던 예약 부도 건수는 최근 절반 이하로 줄었다. 권씨는 "눈에 띄게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졌다"며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그만큼 음식의 질도 높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