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했던 웃긴 놈, 다시 웃기러 돌아왔다

시트콤이 돌아온다.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멸종 상태에 놓였던 시트콤이 속속 제작되며 복귀를 알리고 있다. KBS가 먼저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돼 9일 첫방송을 앞둔 '마음의 소리'는 인터넷에 먼저 공개한 10분 분량 영상이 공개 3주 만에 조회 수 2000만건을 넘겼다. 서울 이태원에 온 네덜란드 남자의 한국 체험기를 그린 2부작 특집 시트콤 KBS '정남이형'도 이번 달 말 방영 예정이다.

시트콤 대가(大家)의 귀환 소식도 들려온다. MBC '남자 셋 여자 셋' '세 친구' 등으로 시트콤 전성시대를 연 김성덕 PD는 다음 주쯤 사전 제작 시트콤 '색다른 남녀' 촬영에 돌입한다.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남녀 세 쌍의 연애담을 다룰 2017년 버전의 '남자 셋 여자 셋'이다. SBS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대본을 맡았던 김의찬 작가는 '정남이형' 대본 집필과 더불어, 1980년대 풍경을 그린 가족 시트콤 '의찬이 엄마' 제작을 결정짓고 종합편성채널 쪽으로 편성을 조율 중이다.

시트콤은 SBS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2012), MBC '엄마가 뭐길래'(2012), KBS '일말의 순정'(2013) 이후 지상파에서 자취를 감췄고, 2014년 tvN '감자별2013QR3'부터 대(代)가 끊겼었다. 김성덕 PD는 "시트콤은 말 그대로 '시추에이션 코미디'인데, 시추에이션은 놓치고 어쭙잖은 코미디만 넣다보니 시청자에게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열악한 작업 여건도 이유로 꼽힌다. 김의찬 작가는 "시트콤 제작비는 드라마의 3분의 1 정도인데, 그간 저비용의 물량 공세를 하다 보니 제작진의 피로도가 컸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일보다 주1~2회, 정통 시트콤보다 단막극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김성덕·김의찬 등 시트콤 제작진 대부분이 그간 드라마 영역에서 활동해 온 데다, '오피스' 등 미국 인기 시트콤 대부분이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적 요소를 적극 차용한 흐름을 반영했다는 것. 내년 2월 방영 예정인 SBS '초인가족'의 경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을 연출한 최문석 PD가 연출을 맡았다. 최 PD는 "따뜻한 가족극이지만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기 모호하다"면서 "드라마와 시트콤 사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시트콤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개연성 부족 등을 드라마적 감수성으로 보완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성격이 드라마 쪽으로 이동하면서 시트콤의 상징이었던 '웃음소리 효과'(Laugh track)는 사라지는 추세다.

검증된 원작을 바탕 삼아 제작 부담과 실패 가능성도 줄였다. '마음의 소리'는 웹툰, '색다른 남녀'는 2013년 김 PD가 낸 과학적 연애분석서 '네 남자 친구가 제일 문제다', '의찬이 엄마' 역시 최근 김 작가가 출간한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다.

시청 환경 변화가 시트콤의 부흥 기반을 마련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KBS 김진홍 예능국장은 "요즘 시청자는 1시간을 전부 할애하지 않고도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한다"며 "시트콤의 장점은 일부분만 떼놓고 봐도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옴니버스 형식이라 회차가 진행돼도 내용이 크게 심화되지 않는 데다, 5~10분 내외 짧은 모바일용 영상 제작도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심상민 교수는 "가족의 가치와 일상의 소소한 웃음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이 시트콤을 다시 호출한 것 같다"며 "그 요구에 응답해야 오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