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당신의 이웃은 안녕하신가요

사회 가장 낮은 곳 사람들의 삶을 현미경처럼 꼼꼼히 들여다보는 여든 살 영국 감독 켄 로치의 방식은, 늘 관객보다 비평가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오늘(8일) 개봉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11월 말까지 전 세계 1258만달러(약 147억원)의 극장 매출을 올렸다. 아마도 이 거장의 영화 인생 최고 흥행작.

따뜻하고 소박해서, 좋은 종소리의 여운이 길듯 마음에 이는 파문도 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잉글랜드 소도시 뉴캐슬의 늙은 목수와 두 아이를 둔 싱글맘이 비인간적 '시스템'에 맞서 인간적 존엄을 지켜내는 이야기. '이 겨울, 당신의 이웃은 안녕하시냐'고, '당신이 포기하지 않아야 당신의 이웃도 버티지 않겠느냐'고 영화는 묻는다. 흔한 일상의 소품을 통해서.

① 2G 전화기 "건강보험 전문가입니다. 양팔을 들어 모자를 쓸 수 있나요?"

심장마비로 일할 수 없게 된 평생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전화로 질병 수당을 신청하려 하지만, 자칭 '전문가'는 '자명종 시계를 맞출 수 있는가' 같은 바보스러운 질문만 반복하다 '일할 수 있으니 수당은 못 준다'고 결정한다. 항의하러 찾아간 복지사무소에서 갓 이사 온 싱글맘 케이티 가족을 위해 말싸움을 벌이다 쫓겨난 다니엘. 가난하다는 것, 관료적 복지제도에 무력하게 거절당하고 있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는 이들은 서로 버텨주는 이웃이 된다. 다니엘의 오래된 2G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자동응답 무한 연결'은 사람을 숫자 취급하는 시스템의 오작동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② 열대어 모빌 "딜런은 누구 말도 안 들어요. 세상도 쟤 말을 안 들어주니까."

데이지·딜런 두 아이의 엄마 케이티는 2년 넘게 아이들과 노숙인 쉼터에서 지냈다. '방에 습기가 차 아이가 아프다'고 집주인에게 항의하다 쫓겨난 뒤의 일이다. 다섯 살 아들 딜런은 그 충격으로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며 끊임없이 이상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다니엘이 손재주를 발휘해 데이지와 딜런에게 나무로 열대어 모빌을 만들어주자, 초라한 아이들의 방은 멋진 놀이터가 된다. 전기도 가스도 끊겼던 케이티의 집. 하지만 집 안 곳곳을 손보고 촛불로 공기 데우는 법도 알려주는 다니엘의 노력으로 조금씩 온기를 되찾는다. 딜런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③ 콩 통조림 "당신 잘못이 아니오. 괜찮소, 다 괜찮소."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남는 법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다니엘과 함께 극빈층에 식품을 지원하는 푸드뱅크를 찾아간 케이티.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식품을 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콩 통조림 깡통을 따 허겁지겁 집어삼킨다. "너무 배가 고팠어요. 늪에 빠진 것 같아요."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져 내리는 케이티를 다니엘이 위로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무거운 현실 앞에 위로는 허공을 맴돈다. 이웃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응시하는 켄 로치적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④ 검은 스프레이 "존엄을 잃으면, 사람은 다 잃는 거요."

임계점을 넘어선 가난의 고통은 끝내 모두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바닥 떨어진 운동화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당했다"는 딸의 말에, 케이티는 신종 매춘 클럽으로 간다. 케이티 가족을 지키지 못한 데 좌절한 다니엘은 복지사무소에 찾아가 "당신네 컴퓨터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건물 바깥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정당한 내 권리를 요구한다…"라고 검은 스프레이로 적는다.

"수당을 받으려면 주 35시간씩 구직 활동을 하라"는 '시스템'. 하지만 의사는 다니엘의 신체가 일을 견딜 수 없다고 했고, 일을 하지 못하니 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목수는 그렇게 마지막 몸부림을 굵은 글씨로 새겼다.

⑤ 쿠스쿠스 "우릴 도와주셨는데, 저는 왜 아저씨를 도와드리면 안 돼요?"

다니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 안에 틀어박힌다. 그때 데이지가 직접 만든 중동식 파스타 '쿠스쿠스'와 어린 동생이 큰맘 먹고 양보한 막대사탕을 들고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소녀의 손에 들린 쿠스쿠스 통에 담긴 것은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이제 내가 아저씨를 도와드릴 차례"라고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다니엘과 관객의 가슴에 함께 울린다. 희망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며, 온기는 서로 맞잡은 사람들의 손에서 비롯된다는 오래된 깨달음을 다시 일깨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이웃의 삶에 당신은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느냐고. 다니엘은 말한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한 푼의 모자람도 없이 나라에 내야 할 돈을 냈습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인간이고, 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를 존중해달라고,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칸은 이 영화를 찍은 켄 로치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상영시간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