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놀라운 예술 재료"

"제 디자인 스튜디오는 실험실이에요. 철, 나무, 플라스틱을 종이처럼 휘게 만들기도 하고 한번은 전기를 만들다 감전된 적도 있어요."

영국의 가구·조명 디자이너 폴 콕세지(38)가 대표작 '돌풍(A gust of wind)'을 설치하러 내한했다. 플라스틱과 아크릴을 이용해 종이가 바람에 날리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으로 가구회사 '퍼시스' 본사(서울 송파)에 전시된다. 그는 "갤러리가 아닌 곳에서의 전시는 드문 기회"라며 "오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창의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콕세지는 대형 미슬토(Mistletoe) 장식 아래서 키스를 하면 전구 5만개가 밝혀지는 'Kiss', 낡거나 버려진 스피커에도 연결해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블루투스 오디오 장치 'Vamp' 등의 작업으로 알려졌다. 매년 영국 최고 디자이너를 뽑는 디자인 뮤지엄의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2004년에 최연소로 받았고 잉고 마우러를 잇는 조명 디자이너로 꼽힌다. 샘솟는 아이디어의 비결을 묻자 "어딜 가든 누군가를 놀라게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 입학해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명인 론 아라드 밑에서 수학했다. 지원할 당시 입학서류 봉투에 정교하게 만든 위조지폐를 넣고 '왜 나를 뽑아야 하냐고?(Why Choose me?)'라는 문구를 써서 제출했다. 뇌물처럼 보이려는 장난이었다. "포트폴리오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다른 훌륭한 지원자들만큼 뛰어나지 않았어요. 서류에 적힌 스펙 외에도 저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학교에서는 나무나 철로 작업하는 친구들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와 빛에 빠졌다. 소년 시절 파일럿이 되고 싶어 수학과 물리를 공부했다는 그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 포기했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보니 물리와 예술이 잘 어울리는 조합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콕세지의 관심은 초소형 전자제품부터 가구, 조각, 대규모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넘나든다. 요즘은 주스바를 열 궁리를 하고 있다. 하루 세 번은 과일·야채를 직접 갈아마신다면서 "육류 섭취가 많다 보니 건강한 식습관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디자인은 색감이 굉장히 중요한데 주스를 갈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죠. 길거리에서 찍는 사진, 친구와 나누는 대화, 매일 마시는 주스…. 세상 모든 일이 작품이 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