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09 09:51

옛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아무런 의심 없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던 일을 그르치게 되었을 때 인용하는 속담이다.

요즘 현대인들이야 도끼 쓸 일이 별로 없으나 2,30년 전 연탄이 귀한 시절 나무를 잘라 땔감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도끼가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나무를 반으로 가를 때 쓰는 이 도구에 발등이 찍혔을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끼는 육체적인 고통만 따른다. 반면에 사람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 충격과 고통은 발등이 찍힌 이상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낄 것이다. 정신적 고통과 충격이 스트레스로 변하여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게 된다.

사진=조선일보DB

지난 몇 주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목이 터지라 외치던 함성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라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시위역사를 돌이켜 보면 수십만의 인파들이 모인 집회는 항상 유혈충돌이 있었고 때론 극한 대치상황으로 운명하는 사람도 나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광화문 집회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집회로 표출되었다. 과거의 집회는 일부 급진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고 보면 이번 광화문 촛불 집회는 정치적 성향과 이념보단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정말 순수하고 순박한 서민들의 집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순수하고 순진하며 순박한 서민들의 발등을 무참히 내리찍은 사람에 대한 분노의 집회라고 할 수 있다.

광화문 집회는 대한민국에서의 정의가 그야말로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각종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현재의 이슈에 대해 정의라고는 한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정의가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대한민국 51%의 국민이 열렬히 지지하고 믿고 존경했던 그분이 무참히 뭉개어 버린 것이다. 그 51%의 국민은 가슴에 피멍이 들어 그것을 스스로 치료할 수가 없어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치료하고자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50 넘게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하고 존경했던 인물이 이렇게 무참히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을 직면하면서 도끼에 발등뿐만 아니라 온 사지가 찍히고 갈라지는 심정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대해 마냥 분노와 외침과 집회로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나라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고 우리의 자식 더 나아가 우리의 후손도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비록 암담하고 서글픈 현실이지만 보다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다 같이 마음을 합쳐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돌이켜 보면 현재 상황이 어느 한 사람만의 실수나 허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 51%의 사람들이 본인의 판단으로 뽑았던 인물이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뒀던 부분은 누구도 책임소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현재의 사태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르는 것은 현시점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가 현재의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

내팽개쳐진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 광화문에서의 집회 참가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제대로 된 정의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올바른 정의가 모여 냇물을 이루어 이 냇물이 큰 강줄기와 합쳐지고 그 강줄기가 대한민국이라는 바다를 이룰 때 비로소 이 대한민국은 진정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 본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