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18% 기차 21%… 줄지 않는 公共서비스 노쇼, 피해자도 국민

"○○님. ○○님 어디 계세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의 한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 검진센터 직원이 예약자들 이름을 수없이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날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예약한 15명 중 5명이 아무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몇 시간 뒤 늦게 연락이 닿은 한 50대 남성이 병원을 찾아와 "예약 사실을 깜빡했는데 다음 주에 받겠다"고 했다. 직원이 "예약이 두 달 밀려 있어 기다리셔야 한다"고 하자 이 남성은 "갑자기 병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고함을 질렀다.

작년 10월 본지가 '노쇼(No-Show·예약 부도)' 근절 캠페인을 시작한 뒤 식당·항공사 등 여러 업계에서 "노쇼가 줄고 손님들 인식도 바뀌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본지 설문조사 결과, 식당의 노쇼 비율은 지난해 20%에서 올해 15%로 줄었다. 그러나 교통·의료·행정 등 공공(公共) 서비스 분야의 예약 문화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 병원·의원의 예약 부도 비율은 18%로 지난해와 같았다. 열차 예약도 마찬가지다. 명절 당일에 표를 '막판 취소'하거나 노쇼 하는 비율이 전체 예매 표의 21%에 달한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상당수 국민은 공공 서비스를 '공짜'라고 여기고 '편의에 따라 예약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공공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는 국민 전체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노쇼 고객에게 꼼짝 못하는 공공 서비스

연골 이식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은평구의 한 종합병원은 수술을 예약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비율이 10%에 달한다. 수술 예약을 한 환자가 당일에 나타나지 않으면 병원은 미리 준비해 놓은 연골 조직을 폐기해야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수술이나 검사 예약을 잡아 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병원 노쇼 때문에 일분일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들이 제시간에 치료를 못 받는다"며 "'수술 노쇼'로 인한 병원의 경제적 피해도 막심하다"고 했다.

명절만 되면 '예매 대전(大戰)'이 벌어질 정도로 예약 경쟁이 치열한 철도도 노쇼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9월 13~18일) 기간에 코레일 열차 승차권을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한 사람 5명 중 1명(20.7%)은 출발 당일에야 예매한 표를 '막판 취소'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미국·독일 등 철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노쇼 위약금을 물리고 있는 현행 시스템이 예약 부도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서비스에 왜 위약금을 물리느냐'는 시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코레일은 여전히 한 사람이 온라인으로 열차표를 최대 12장까지 예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출발 당일 1시간 전에 막판 취소를 해도 위약금으로 400원만 물리는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도 위약금이 노쇼 줄인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노쇼를 줄이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 노쇼에 대해 위약금이나 이용 제한 같은 페널티(벌칙)를 물렸더니 예약 부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서울시청이 운영하는 서울도서관은 도서 대출 예약을 해놓고 아무 연락 없이 찾아가지 않는 예약 부도율이 최근 3년간 47.5%에 달했다. 예약을 지키지 않아도 도서관 이용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 종로구의 종로도서관은 2013년 7월부터 한 달에 세 번 이상 대출 예약을 멋대로 깨는 이용객에게 30일 동안 도서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종로도서관의 지난해 노쇼 비율은 16.8%(1만1738건 중 1977건)로 서울도서관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