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 연말엔 평소의 2배" 대리·택시기사들이 울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11시 20분 서울 강남구 강남역 부근. 대리운전 기사 송모(46)씨가 스마트폰에 깔린 대리운전 전용 앱을 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뒤 스마트폰에서 '띵동' 소리와 함께 서초구에서 도봉구로 가는 2만5000원짜리 대리 요청이 뜨자 송씨는 '확정' 버튼을 누르고 지하철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1분이라도 빨리 손님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송씨가 지하철을 타고 10여분 뒤 서초역 인근에 도착했을 때 손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전화를 건 끝에 연락이 닿은 손님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친구가 부른 대리기사가 먼저 와서 (그걸) 탔다"고 했다. "다음부터는 미리 취소를 해달라"는 송씨의 말에 손님은 오히려 "그 정도 서비스 정신으로 무슨 영업을 하느냐"고 호통쳤다. 송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을(乙) 중의 을'인 대리기사들에게 '노쇼(No-Show·예약 부도)'는 밥그릇을 차버리는 짓"이라고 말했다.

◇대리기사·택시기사 등 사회적 약자 울리는 노쇼

택시기사 이모(57)씨는 지난 1일 오후 11시 손님의 콜(호출)을 받고 600m 거리를 달려 서울 영등포구 중앙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3분 전 이씨에게 전화해 "더 빨리 오라"고 재촉했던 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다른 빈 택시를 타고 가버린 것이다. 이씨는 "연말이 되면 택시 예약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손님이 평소의 2배 가까이 급증한다"며 "예약을 지키지 않은 피해는 고스란히 택시기사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노쇼'의 최대 피해자는 택시기사와 대리운전 기사 같은 사회적 약자(弱者)들이다. 음식점 등 다른 업종은 노쇼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가격 인상 등을 통해 다른 손님에게 전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리운전과 택시는 경쟁이 치열한 데다 시장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쇼로 인한 손실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대리운전기사는 심야에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하고 월평균 200만원을 번다(2014년 기준). 하지만 회사에 내는 수수료와 대리운전 전용 앱 사용료(3만~7만원), 보험료(13만~20만원) 등을 빼면 순수입은 월 150만원 정도다. 이런 박봉(薄俸)을 감안할 때 "노쇼는 생계를 위협하는 적(敵)"이라고 대리기사들은 하소연한다.

◇콜택시 위약금 안 물렸더니 노쇼 급증

항공사와 렌터카, 식당 등은 '당근과 채찍'으로 노쇼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노쇼에 대해 위약금 같은 페널티(벌칙)를 물리고, 예약을 잘 지키는 고객은 우대하는 것이다. 반면 콜택시 업계는 위약금을 없앴다가 노쇼가 급증하는 피해를 입었다. 서울 시내에서 약 120대의 고급 콜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블랙'은 올해 3월까지 스마트폰 지불 앱인 '카카오페이'로만 결제할 수 있었다. 카카오페이를 이용하려면 요금을 자동 이체할 수 있는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해야 한다. 예약한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카드에서 5000원의 위약금이 빠져나가는 구조였다. 나비콜 등 다른 콜택시 업체들이 노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과 달리, 카카오블랙에서는 위약금 덕분에 노쇼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월 31일 카카오블랙이 일반 콜택시처럼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한 뒤 노쇼가 급증했다. 카카오블랙 기사들에 따르면, 요금 결제 방식이 다양해진 지난 3월 말부터 예약 10건 중 2건꼴로 노쇼가 발생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