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政은 정신적 건국" "1948년 건국론은 헌법 위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을 국정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한 것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검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1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인 김명섭 연세대 교수, '대한민국 수립'을 지지하는 강규형 명지대 교수, '1919년 건국론(論)'을 주장하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고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창록 경북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명섭 교수는 "전근대적인 '조선(朝鮮) 주권'을 버리고 넘어서며 탄생했던 근대적 '대한(大韓) 주권'은 1897년 대한제국,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1948년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며 "'건국'이 아니라 '수립'이란 표현을 쓴 건 대한민국이 1919년 이후 30년에 걸친 근대국가 건설 노력의 완성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강규형 교수는 "대한제국,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해방, 대한민국은 서로 대립되는 사건이 아니라 공존하고 통합되는 역사적 단계로 이해해야 한다"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정신적 건국',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실질적 건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시준 교수는 "'1948년 건국론'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의 요소를 갖추었기에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임정 계승을 밝힌 헌법에도 위배된다"며 "임정을 부인하면 역사를 왜곡·축소·단절하게 되고 남북한을 대등 관계로 만들어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첫 번째 쟁점이 된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국가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양승태 교수는 "우리 임정은 국민 대표성, 통치권, 국제법적 승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창록 교수는 "임정은 내정·외교·국방 면에서 일정한 실적이 있었으므로 실효성을 가진 국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훈 교수는 "'영토·국민·주권을 갖춘 권력기관'이라는 국가의 정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임정은 불완전한 국가였고 제대로 요건을 갖춘 국가는 1948년에 '건국'됐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쟁점은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뉴라이트 역사관이나 '건국절' 주장으로 이어지느냐는 것이었다. 정영훈 교수는 "'1948년 건국론'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민족·민족사와 분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교수는 "8·15는 '건국일'이지만 이를 '건국절'로만 규정하여 '광복'의 의미가 퇴색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명섭 교수는 "이제까지 어떤 뉴라이트 단체에도 가입한 적이 없으니 뉴라이트와 연결시키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강규형 교수는 "'대한민국 수립·건국'과 건국절 주장은 별개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반대하는 광복회 회원들이 대거 참석, 고성이 오가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