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례행사 치르듯… 2년만에 또 살처분 1000만마리 넘어

지난 11월 16일 전남 해남 닭 농장과 충북 음성 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이래 한 달도 안 돼 살처분한 닭·오리 수가 1000만마리(12일 기준, 살처분 예정 포함)를 넘어섰다.

정부는 이번 고병원성 AI가 역대 최악의 피해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최대 피해 사례는 2014년 1~7월 번졌던 H5N8형 고병원성 AI다. 195일간 닭·오리 1937만마리를 살처분했었다. 정부는 빠르게 확산하는 AI 차단을 위해 13일 0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에 '일시 이동 중지' 명령을 발령했다. 이번 AI 발생 이후 세 번째 이동 중지 명령이다. AI는 우리나라에서 2003년 처음 발생한 이후 연례행사처럼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AI 발생과 가축 대량 살처분은 불가피한 것일까. 내막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①밀집된 사육 농가

미국과 일본은 AI 발생 농가만 살처분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발생 농가 반경 500m 이내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반경 3㎞ 이내까지도 살처분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농장들이 좁은 지역에 밀집돼 있어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살처분 범위를 넓게 잡기 때문이다.실제 이번 H5N6형 AI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충북 음성군의 경우 발생 농가 500m 이내에 10개 농가가, 반경 3㎞ 이내엔 56개 농가가 있었다. 음성군에서 나온 AI 양성 농가 35곳 가운데 23곳(65%)이 맹동면에 몰려 있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12일까지 양성 확진 판정을 받은 전국의 농가 127곳 중 68곳(53%)이 가금류 밀집 사육 지역으로 꼽히는 충북 음성과 진천, 경기도 이천과 포천에 위치해 있다.

②축산 농가, 방역에 대한 인식 부족

개별 농가의 방역에 대한 인식 부족도 AI를 확산시키는 주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AI는 철새를 통해 퍼지는데, 철새는 경계심이 많아 농가 바로 옆까지 가는 경우는 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농가 인근에 떨어진 철새 분변 등을 사람이나 차량이 묻혀서 농가로 들어와 전파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H5N6 AI 바이러스의 중간 역학조사 결과 양성 확진 산란계 농가 38곳 중 28곳(73%)이 방역복이나 방역 신발을 제대로 갖춰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③방역 공무원 부족

정부 전체의 방역 정책은 중앙정부에서 담당하지만 각 지자체에선 가축방역관이라는 지방직 공무원이 담당한다. 그러나 이 가축방역관은 전국에 270명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 1곳당 1.2명 수준에 그친다. 강원 11곳, 경북 6곳, 경기 3곳, 충북 2곳 등 전국 25개 기초단체는 가축방역관이 없다.

④늦어지는 살처분

살처분 속도가 늦어지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AI 확산을 막기 위해 '광범위한 사전 예찰→바이러스 조기 발견→살처분'이라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살처분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몰지를 구하고, 용역 회사를 통해 살처분 인력을 구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처분이 하루 늦어지면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2~3배 늘어난다.

⑤잘못된 인센티브 제도

AI 방역을 위해 살처분을 하면, 정부에서 해당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이 보상금을 산정하는 방식이 AI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감염되지 않은 농가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하면 피해액(시가)의 100%를 지급한다. 감염된 농가의 경우는 방역상 문제점이 없을 경우 피해액의 80%를 지급하고, 방역에 헛점이 있었을 경우 깎아나간다. 방역을 열심히 했다면 감염이 됐더라도 최대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정책인데, 문제는 농가들이 이런 보상금을 믿고 방역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방역상 잘못이 있어 보상금을 깎일 것으로 예상하는 농가들이 신고를 기피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