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씁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1998년 당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고교 역사 교사였던 네드 포니(53)씨는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문화 교류 지원을 받아 3주간 방한했다. '왜 한국에 가려는가?'라 묻는 지원서에 '할아버지 고(故) 에드워드 H 포니가 미 해군 대령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 역사를 알고 싶다'고 썼다.

그의 사연을 우연히 접한 현봉학(1922~2007) 박사에게서 "꼭 만나고 싶다"는 서신이 왔다. 고인이 된 현 박사는 '한국의 모세'라 불린다. 1950년 12월 미군 통역관으로서 열흘간 10만여 명의 북한 피란민을 흥남항에서 남한으로 실어 나른 '흥남 철수 작전'을 도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당시 상황이 재현됐다.

포니씨를 만난 현 박사는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당신 할아버지는 흥남 철수 작전 지도자 중 하나였고 통역관이었던 나와 매우 친했다"며 "부대를 정비하고 철수시키는 책임자였던 포니 대령은 큰 공을 세운 영웅"이라고 했다. 포니 대령은 전쟁이 끝난 뒤 1957년부터 2년간 한국에서 해병대 고문으로 근무했다. 베트남전쟁 참가 후 미국으로 돌아가 1965년 사망했다.

"그때까진 가족 중 누구도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해낸 일을 몰랐어요. 그 이후 우리 가족의 삶은 한국과 떨어질 수 없게 됐습니다." 현재 네드 포니씨는 아들 벤(29)과 한국에 산다. 이집트·UAE·중국에서 국제학교 교장을 지내고 2015년 한국에 왔다. 할아버지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다. 지난 12일 만난 그는 "미국인들 대부분이 6·25전쟁에 대해 모른다"며 "역사뿐 아니라 비극 속에 핀 인간의 사랑, 우정을 담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의 주인공은 포니 대령과 현봉학 박사다. 두 사람의 성장 과정과 시대 상황을 소개하고 전장에서 만나 10만명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네드 포니씨의 노트북엔 6·25전쟁과 두 영웅의 사진 수백 장, 전쟁 관련 논문·기사들이 빼곡히 갈무리돼 있었다.

그는 "특히 한국에서 흥남 철수 작전으로 살아남은 피란민 25명을 직접 만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렸다"고 말했다. 올해 88세가 된 피란민은 "당시 북한 청진 전선(戰線)으로 가는 군사 트럭에서 본 스무 살 미군 청년의 울음 섞인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손을 잡고 울었다. "피란민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책에서 그 이야기도 복원할 예정입니다."

매일 8시간 카페에서 쓴 원고가 이제 500쪽이 됐다. "내년까지 완성해 미국과 한국 출판 시장에 선보이고 싶다"란 아버지 말에 "아휴, 이미 많이 썼어요. 좀 줄이세요"라고 아들이 하소연했다. 한국에서 8년째 살고 있는 '한국 생활 선배' 아들은 아버지를 돕는 후원자다. 미국 대학 졸업 후 서울대 국제대학원을 나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외교정책과 북한 연구를 하고 있다.

벤 포니씨는 "증조부와 한국의 인연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자랐기에 한국에 이끌렸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 집 구하기부터 인물 섭외·통역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부자(父子)는 상의 끝에 책 제목을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로 정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1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따온 표현이다. 벤 포니씨는 "미국과 한국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흥남 철수'라는 따뜻한 기적을 이뤘다"며 "아버지가 쓴 책을 통해 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