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189편, 15년간 최다 응모작… "분노의 詩로 뜨거웠다"

201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문학의 중흥을 예감케 하는 열기로 뜨거웠다. 지난 9일 마감한 8개 부문(시·단편소설·시조·동시·동화·희곡·문학평론·미술평론) 응모작은 모두 1만189편. 지난 2002년도 이후 15년 새 최다 기록이다. 시 6888편, 단편소설 712편, 시조 616편, 동시 1388편, 동화 333편, 희곡 218편, 문학평론 15편, 미술평론 19편으로 지난해보다 모든 부문에서 응모작이 증가했다. 시·소설 예심은 지난 16일 진행됐다.

시의 폭증세는 특히 고무적이다. 지난해(4886편)보다 2000편 넘게 늘어 41% 증가율을 보였다. 마감 기한을 일주일 늦춘 영향도 있겠지만 이 같은 시 열풍은 최근의 분위기가 반영된 현상이기도 하다. 예심을 맡은 김민정 시인은 "SNS가 일상화돼 단문(短文)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시에 대한 거리감도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도 자기 시가 SNS에서 유명하니 책을 내달라며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를 투고하는 사람이 매달 100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시집 전문 서점의 잇단 등장과 초판 복각본 시집 출간, 독자를 위한 시 주문 제작 등 각종 이벤트가 소문을 타면서 시의 인기가 높아졌다. 지난 13일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한국 시집 판매율은 지난해 대비 506% 증가했다. 문태준 시인은 "시는 스스로를 관조하고 회복시키는 내부의 글쓰기"라면서 "여느 때보다 시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시의 뜨거움은 그러나 '분노'인 경우가 많았다. 강정 시인은 "화가 나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응모자의 트위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심화된 취업난 등에서 비롯된 열패감, 촛불 민심 등을 다룬 시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문태준 시인은 "시적 화자의 불안감이 느껴졌다"면서 "고해성사라든지 기도, 예배를 다룬 종교적인 시가 많았다는 점도 그런 잠재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른바 '난해시'라거나 산문시는 줄었지만, 실험 정신 혹은 운동성이 느껴지는 작품 역시 드물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와 드잡이하려는 불씨를 찾기 힘들었다. 사고나 감각의 밀도가 정체돼 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소설의 경우 초현실적 응모작이 많았다. 미래나 가공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반추하는 SF 소설이 상당수였다. 한은형 소설가는 "안드로이드(인조인간)와 함께 살게 된 상황의 대처라든지 미래 식량 같은 앞으로 닥칠 고민을 다룬 얘기가 눈에 띄었다"고 평했다. 지난해 본지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역시 서기 2841년의 우주선과 인류를 그린 SF 소설이었다. 백가흠 소설가는 "신춘문예에 이렇게 많은 SF 소설이 몰리는 건 다른 신문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완성도 면에선 아쉽다는 평이 뒤따랐다. 정용준 소설가는 "현실 정치를 고발하는 작품도 여럿이었지만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사실 나열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윤성희 소설가는 "주인공이 아침에 잠에서 깨거나 전화를 받고 누군가를 만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응모작이 많았다"면서 "'무릇 소설은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심 결과 시 15명, 소설 8명이 본심에 진출했다. 다른 부문은 예심 없이 곧장 본심이 치러진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고, 2017년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당선작을 발표한다.

[예심 심사위원]

시― 시인 강정·문태준·김민정
소설― 소설가 윤성희·백가흠·정용준·한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