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만 갈아입었는데… 인기스타가 되었네요

30대 직장인 김수정(가명)씨는 최근 시공사에서 나온 제인 오스틴 전집(全集)을 '충동구매'했다. 영국 패션 브랜드 '캐스 키드슨(CATH KIDSTON)' 꽃무늬 패턴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 김씨는 블로그에 "제인 오스틴 원작 BBC 드라마도 다 봤고 휴가 때 영국 중고 서점에서 원서 '엠마'도 샀는데, 정작 책은 제대로 못 읽었다"며 "기왕 저지른 일 이번에 한번 제대로 읽고 싶다"고 했다.

얼굴 '성형'을 받는 책이 많아졌다. 표지가 예쁘다고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검증된 베스트셀러나 유명 작가의 책을 표지만 살짝 바꿔 펴내는 출판사가 늘었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와 유명 패션 업체 간 '컬래버레이션(협업)'도 많아졌다. 민음사는 지난 5월 여성 패션 브랜드 '키이스(KEITH)'와 협업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등의 표지를 패션화보풍 사진으로 바꿨다. 덕분에 3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한정판 1만3000부를 모두 팔아 치웠다. 여성 모델이 등장한 감성적 사진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표지를 일본풍으로 바꾼 '노르웨이의 숲'은 한 인터넷 서점에서 한때 주간 판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 표지 디자인만 바꾸는 속칭 '리커버' 마케팅이 늘어난 것은 책을 '팬시 상품'처럼 대하는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은미 시공사 문학팀장은 "요즘은 책 표지도 주요 소비자인 20~30대 여성들 감성을 많이 따라가고 있다"며 "내용과 표지 디자인이 잘 맞아떨어지면 판매량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 판매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 예쁜 표지를 채택하기도 한다. 출판사 아르테는 최근 10만부를 넘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표지 장정을 붉은색으로 바꾼 한정 개정판을 출시했다. 원미선 21세기북 출판본부장은 "연말을 맞아 선물용으로 찾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과거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띠지만 바꿔 씌우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최대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도 포털 사이트 다음의 유명 웹툰 작가 4명에게 표지 디자인을 맡겨 4가지 버전의 책 표지를 내놓았다. 출판계에선 "베스트셀러에 대한 관심이 식기 전에 새로운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계속 이어가자는 목적에서 나온 마케팅"으로 보고 있다.

서점들도 안정적으로 책을 팔 수 있어 출판사와 협업해 다양한 개정판을 내놓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유명 고전을 표지만 바꾼 '리멤버북' 한정판, 교보문고는 '교보 리커버-K', 알라딘은 '알라딘 본투리드' 등의 시리즈가 있다. 유통업계에 널리 퍼진 대형마트 PB(자체 브랜드) 상품처럼 유명 작품에 한해 자신들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버전을 별도로 주문 생산하는 것. 서점 측이 판매를 책임지기 때문에 출판사 리스크(risk)도 적은 편이다. 책과 함께 파우치나 컵 등 특별 제작한 사은품을 끼워 팔기도 한다.

출판계 사람들이 '책 성형'을 좋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한 대형 출판사 주간은 "출판사 스스로 양질 베스트셀러를 만들지 못하고, 도서정가제로 '가격 할인' 등 기존 마케팅 수단을 쓰는 길까지 막히자 최근 표지만 바꾸는 책이 많아졌다"며 "내용보다 장식적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