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후발주자서 예능강자로… 기회의 무대 된 '불후'

"'불후의 명곡' 보고 싶다는 아내의 성화에 사연 엽서만 열댓번 썼어요. 글솜씨 없다고 타박받다가 다행히도 '왕중왕전' 방청권에 뽑혔죠. 내일이 우리 부부 결혼 40주년이에요."(한상완·63)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 공개홀에서 열린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왕중왕전. 500여명 관객 대부분은 40~60대 중·장년층이었다. 주부 민경숙(57)씨는 "토요일 저녁마다 옛 노래 들으면서 위로감을 주던 프로그램"이라면서 "막내딸이 방청권을 신청해줘 녹화장을 찾았다"며 웃었다.

◇명곡 재해석, 중·장년층 향수 자극

2011년 첫 방송 후 벌써 5년을 넘긴 이 프로그램은 '전설을 노래하다'라는 부제(副題)처럼 흘러간 명곡을 재조명해 향수를 자극한다. 자유곡으로 치러진 '왕중왕전' 역시 고전이 된 명곡의 향연이었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1989)를 필두로 '그 겨울의 찻집'(조용필·1985) '우리는'(송창식·1983) '내일'(김수철·1979) '그날들'(김광석·1991) '흐린 기억 속의 그대'(현진영·1992) 등이 뒤를 이었다.

무대가 끝난 뒤 카메라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던 관객들을 잡느라 분주했다. 박주희(44)씨는 "옛 노래를 들으니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했다. 권재영 PD는 "방송에 '전설의 가수'가 나오면 그 가수와 관련된 옛 추억을 소상히 적어 사연 올리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나가수' 아류에서 토요 예능 강자로

첫 방송 당시 '불후'는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아류로 취급받았다. 김건모·이소라·임재범 같은 정상급 가수가 경연을 펼쳐 탈락자를 가리던 '나가수'가 화제를 모으자 KBS가 급하게 꺼낸 '맞불 카드'였기 때문.

이듬해 명운은 뒤바뀌었다. '나가수'가 채 50회를 채우지 못하고 종영한 반면 '불후'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도약했다. 주(主) 시청층이 콘텐츠를 TV로 소비하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서다. 2016년 세대별 평균 시청률(TNMS·전국 기준)은 40대 이상(5.6%)이 30대 이하(1.4%)의 4배 정도였다. 40대(3.3%)에서 50대(6%), 60대 이상(7.4%)으로 올라갈수록 선호도가 더 높았다. 방청권 경쟁도 뜨겁다. 방청권 500장을 두고 매주 5000여건 사연이 경쟁한다. '왕중왕전' 녹화 땐 7000여건 사연이 올라와 역대 최고인 12대1 경쟁률을 기록했다.

◇장르 성역 없는 가수들 '기회의 장'

장르의 다양성도 '불후'의 인기 요인. 탈락을 피하려 고음 일색이던 '나가수'와 달리 출연 기회를 보장해 가수들에게 '하고 싶은 무대'를 이끌어낸다. 이날 'Time to say goodbye'를 뮤지컬 버전으로 선보인 배우 김소현·손준호 부부는 "장르의 성역이 없는 '불후'가 안방극장에 뮤지컬의 매력을 선보일 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태헌 PD는 "무명 인디밴드부터 잊혔던 가수의 재림까지 이 무대는 가수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장'"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쯤 시작한 녹화는 자정쯤 끝났다. 촬영장을 빠져나가는 '아빠 엄마'들의 얼굴은 지친 기색 없이 밝았다. 발걸음도 여고생처럼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