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타깃? '몸캠', 남성도 노린다

"제 나체를 찍은 동영상이 카카오톡에 떠돌고 있으니 더 퍼지기 전에 유포한 범인을 잡아주세요."

지난 16일 오전 한 20대 남성이 서울 서초경찰서에 사색이 된 얼굴로 찾아왔다. 친구로부터 "너와 똑 닮은 사람이 음란 행위를 하는 영상이 메신저에 떠돈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해 보니 자신이 맞더라는 것이다. 이 남성은 자신의 동영상이 찍히게 된 경위를 밝히지는 않고 "무조건 유포를 막아 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서초서 관계자는 "최근 이 남성을 비롯해 수백 명의 몸을 찍은 영상이 해외 SNS 계정을 통해 개당 수만원에 판매되고 있다"며 "일반인 남성이 등장하는 몸캠이 판매용으로 대량 유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던 '음란 동영상' 범죄가 일반인 남성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남성의 나체나 음란 행위를 찍은 동영상(몸캠)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 대표적 수법이다. '몸캠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음란 사이트에 접속해 알몸으로 화상 채팅을 하며 성적 만족을 얻으려는 이용자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11월까지 남성을 상대로 한 몸캠 범죄는 1018건 발생했다. 한 달 평균 92건가량 발생한 것이다. 2015년 8월부터 12월까지 102건이 발생해 한 달 평균 20건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4배 넘게 급증했다. 수치심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는 남성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몸캠으로 협박해 24억원을 뜯어낸 사기단이 체포됐는데, 피해자가 4100명을 넘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남성을 노리는 몸캠 범죄의 증가는 전통적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의 신체 노출이나 성관계에 관대했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몸캠 피해자들은 녹화가 되는지 모른 상태에서 범죄 조직이 동원한 여성과 화상으로 음란 행위를 하다가 낭패를 본다. 범죄 조직은 상대 남성에게 "화면이 잘 안 보인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해킹을 할 수 있는 악성 프로그램을 보낸다. 남성이 이를 실행하는 순간 컴퓨터가 해킹돼 개인 정보가 빠져나간다.

지난 10월 중순 경기도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 몸캠 범죄에 걸려 "200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영상을 뿌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이 학생은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용의자들은 해외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 잡히지 않았다.

최근엔 몸캠 범죄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속인 뒤 "알몸을 찍은 영상을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또 피해자에게 접근해 '몸캠 영상을 삭제해주겠다'며 돈만 받아내고 도망가는 '삭제 사기'도 등장했다. 지난 10월에는 미국의 보안 회사를 가장한 사기단이 '몸캠 구제'를 빌미로 700여 명으로부터 4억원을 뜯어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꼭 협박용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몸캠을 수집해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최근엔 유명 남성 연예인들의 몸캠 영상이 떠돈다는 루머가 퍼져 해당 연예인들이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과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음란·성관계 동영상 범죄는 주로 특정 여성에 대해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수치심을 주려고 저질렀다"며 "남성이 먹잇감인 몸캠은 궁극적으로 돈을 노린 범죄라는 게 큰 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