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직설적 정치언어 쏟아내며 "정치 혼자 하는 것 아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일(현지 시각) 한국 특파원단 기자간담회와 뉴욕총영사관 주최 교민 다과회에서 "한 몸 불사르겠다" "물불 가리지 않겠다" "몸 사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선(大選) 도전 의사를 강하게 드러냈다. 급박한 국제 정세에 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외교관 출신다운 정제된 발언으로 '기름 장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지금까지의 반 총장과는 달리 이날은 정치인을 연상할 정도의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다만, 새누리당과 보수신당, 국민의당, 제3지대 등 어느 세력을 택할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않고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해 "나라가 없고 국민이 없는데 파(派)가 뭐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고 하기도 했다. 탄핵 중인 점을 고려해 귀국 후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귀국 신고를 하겠다고 하는 등 친박계와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는 "귀국을 앞두고 국내 일을 보면서 참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촛불로 나타난 민심은 국민의 좌절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새누리당 입당, 제3지대 연대에 대한 생각은.

"국민들이 선정(善政)의 결핍에 대해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고 사회에 쌓였던 적폐가 드러나고 있는데, 이런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개인적으로 많은 요청을 해 오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수단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현재 서울의 정치 상황은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다. 중간지대에 대해서는 당장 답변이 어렵다. 모든 것은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미력한 힘이지만 국가 발전과 국민 복리 증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하면 몸 사리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많아 쉬는 게 어떠냐고 하는데 건강이 받쳐주는 한 국가를 위해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

―대선에 출마할 건가.

"유엔 사무총장 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귀국 후 각계 국민을 만나서 말씀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이 배신당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정작 반 총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얘기가 있다.

"국민들이 선정의 결여에 대해 배신감 느낀다고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특정 지도자에 대해 언급한 게 아니다. (외교부 장관을 시켜준)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배신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치적인 공격, 의도가 있는 인격 모독이다. 평생 배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신뢰가 없었다면 유엔 사무총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 묘를 참배했고 매년 새해가 되면 권양숙 여사께 전화를 드렸다."

―북핵 문제 해결은 실패했다.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많이 노력했고 채널도 유지해 가면서 얘기해 왔다. 세 번에 걸친 방북 기회가 북측의 일방적 취소로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상이 필요한가.

"총장 10년 하면서 많은 정상을 만났다. 1년에 만난 국가 정상 숫자가 300~400명 된다. 그런 과정에서 성공한 지도자는 어떻게 성공했고 실패한 지도자는 왜 실패했는지 알게 됐다. 실패한 지도자에게 화도 내고 충정 어린 충고도 했다. 결국 화합과 통합, 포용적 대화를 해야 진정한 지도력이 나온다. 리더십의 요체다."

―한국의 리더십은 왜 실패했나.

"정치 지도자들이 자기를 버려야 한다. 국민이, 나라가 없는데 정당이 뭐가 중요하며 노론·소론, 동교동·상도동, 비박·친박이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

―내년 1월 중순 귀국 후 박 대통령을 만나나.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상 당연히 만나야 하는데 탄핵소추가 된 상황에서 총리에게 권한을 맡겼으니 황교안 권한대행을 예방해 귀국 신고하고 국회의장·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을 만날 것이다." 그는 이어진 동포 다과회에서는 "한국에 가서 깊이 고뇌해 제 역할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