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23 01:01

'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낸 인병선 관장·김도형 延大 교수

곡식 담는 자루를 가리키는 '가마니'는 순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 '가마스[叺]'에서 유래했다. 1876년 개항 후 조선에서 일본으로 미곡 유출이 증가하면서 일본식 쌀자루가 조선에 들어왔다. 1907년 조선에서 일본식 가마니가 처음 만들어져 시장에 상품으로 등장했고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뒤 급속도로 퍼졌다.

일제의 한국 침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마니의 역사상을 보여주는 사료(史料)가 짚풀문화 전문가(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와 역사학자(김도형 연세대 교수)의 협업으로 한데 묶였다. 최근 간행된 '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농민수탈사'(창비)는 1910~1945년 일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민간신문인 조선·동아일보에 실렸던 가마니 관련 기사들을 뽑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현대어로 풀었다.

일본식 쌀자루인 ‘가마니’가 일제 침략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했던 역사적 역할을 보여주는 자료집을 함께 펴낸 인병선(오른쪽) 짚풀생활사박물관장과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일본식 쌀자루인 ‘가마니’가 일제 침략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했던 역사적 역할을 보여주는 자료집을 함께 펴낸 인병선(오른쪽) 짚풀생활사박물관장과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이명원 기자

책이 나오게 된 계기는 인병선(81) 관장이 볏짚으로 만드는 가마니와 관련된 기사가 일제강점기 신문에 하루에도 2~3건씩 실리는 것을 발견하고 복사해 모으면서였다. 토속적 서정성과 민중적 역사의식을 지녔던 신동엽(1930~1969) 시인의 아내이자 농업경제학자 인정식(1907~?)의 딸인 인 관장은 "아버지와 남편의 영향인지 농촌이 편했고 농촌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인 관장은 짚풀로 만든 유물을 집중 수집해 1993년 박물관을 설립했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짚풀문화'(현암사) 등 책도 여러 권 냈다.

1920~40년 조선·동아일보에 수록된 자료를 모은 인병선 관장은 2010년 한국대학박물관협회장을 맡고 있던 김도형(63) 교수를 알게 되면서 협력을 요청했다. 한국근대사를 전공하는 김 교수는 조선·동아일보가 발간되지 않은 1910년대와 1940년대의 매일신보 자료를 추가했다. 1000건이 넘는 자료가 수집됐고 이 가운데 당시 농민의 생활상과 시대상을 잘 드러낸 것을 지역별로 안배하여 340건 골랐다. 김 교수가 관련 자료를 토대로 '해설'과 시기별 '개요'를 붙였다. 김 교수는 "인정식 선생이 쓴 글을 읽었던 후학으로 학문적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책은 '토지조사사업기'(1910~1919년), '산미증식계획기'(1920~1931년), '농촌진흥운동기'(1932~1936년), '전시통제 및 총동원기'(1937~1945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자료를 수록했다. 일제는 식민 통치 초기에 가마니 짜기를 농촌 규율 수단으로 보급했고 수탈이 가중된 뒤는 농민 빈곤 완화를 위한 부업으로 장려했다. 전쟁이 본격화되면서는 군수용품과 무기 조달을 위한 '애국 가마니' '가마니 보국'이 강조됐다. 1930년대 말 조선에서는 가마니를 연간 1억장 만들어야 했다. 김도형 교수는 "일제 통치는 도시·철도·상업 등 다른 부분들은 근대적 모습도 있었지만 농촌의 경우는 철저하게 수탈의 대상이었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마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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