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예년은 지금쯤이면 40도를 넘었다고 하는데 올해는 아직 20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올해는 추운 겨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정치와 경제가 어려워지고 덩달아 온정의 손길마저 줄어드니 그 여파로 이 사회의 취약층은 더 힘들고 어려운 겨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봉사활동 16년
밀레니엄이 화두(話頭)였던 지난 2000년, 인터넷에 유행하던 4050 (40대, 50대)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도 해보자고 착안한 것이 '봉사활동'이었다. 매달 한 번씩 셋째 일요일에 고양시 소재 '희망맹아원'을 찾아가 점심 한 끼 맛나게 해드리기로 하였다.
당시만 해도 정말이지 쓰러져가는 건물에 위생상태나 주변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던 곳이었으며, 원생들 식사는 근처 부대의 남은 밥이나 식당 등에서 남은 밥과 반찬을 얻어다가 먹이는 형편이었으니 한 끼라도 맛나고 깔끔한 밥을 해드리려는 것이 처음 목표였는데 세월이 흘러 16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책임지는 운영진이나 동참하는 회원들이 계속 바뀌면서도 이 원칙과 활동은 변함없이 184회를 맞이하였으니 1년이 12달이고 10년이 120회, 15년이 180회, 만 15년하고도 4개월째의 봉사활동을 이번 달에 다녀왔다.
송년 잔치
1년 12달을 빠짐없이 봉사다니 다 보면 추석이나 연말, 설날 등이 겹쳐지면서 단순하게 음식만 대접하기는 어딘지 아쉬워진다. 그래서 이럴 때면 나름대로 작은 선물도 하나씩 준비하고 식사나 후식도 푸짐하게 해드림으로써 명절을 명절답게 하고자 애쓰게 되는데 이달에는 송년맞이 작은 잔치를 벌여 드렸다. 그래서 식사도 더욱 더 푸짐하게, 이번에는 등갈비찜과 굴전, 잡채 등으로 준비하였고 다가올 동짓날에 맞추어 후식으로 '새알 팥죽'도 조금씩 준비해 드렸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여러 가지 과자와 음료수, 과일 등으로 다과상을 마련하고 사전에 협조한 4인조 색소폰 밴드의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으로 흥겨운 시간을 마련하였고, 민요하시는 여성분들 네 분도 초대하여 우아한 무용과 남도 소리로 한껏 흥을 돋우니 이에 들떠서 원생들도 한 사람씩 나와서 노래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는 등 그야말로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여 겨우내 입을 수면 바지와 수면 양말, 그리고 세면 후 바를 로션과 여성원생들에게는 얼굴 팩도 한 장씩 넣고, 각종 음료와 과자, 떡도 골고루 챙겨 넣어 드렸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드린 녹음기가 여러 대 있으니 음악 CD도 여러 장 추가로 나눠 드리고 악기를 원하는 분이 많아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멜로디언을 추가로 사드리니 원생들이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봉사활동은 꾸준히 참석하시는 20명 안팎의 회원들이 직접 노력봉사를 하시고, 또 매달 1~2만 원씩의 성금을 꾸준히 보내주시는 30명 남짓한 회원들의 성원으로 16년을 유지했고,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200회, 300회를 이어 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용실 원장은 식사 시간 외에 짬을 내어 원생들 머리 손질도 꼼꼼하게 해주고 있으며, 멀리 부산에서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매달 과일을 택배로 꾸준히 부쳐주시는 회원도 있고, 수시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으면 목돈을 넣어주거나 떡을 한 말 해옴으로써 푸짐한 간식을 대어주는 회원들이 있어 이 봉사모임에는 늘 따뜻함이 넘쳐 난다.
애초에 봉사를 시작할 때는 '희망맹아원'이었으나 지금은 '소망복지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맹인이 아닌 분들도 더러 계시지만 대부분은 맹인이고 또 복합장애를 갖고 있어 활동이 어렵거나 정상적인 생활이 힘든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항상 밝은 얼굴에 늘 기도하고 찬송하는 삶을 사는 원생들을 볼 때마다 봉사하는 보람이 느껴지고 봉사를 마치면 외려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이날 순서가 되어 앞에 나온 여성원생이 찬송가를 부르기에 앞서 '일반적으로 맹인이면 잘해야 길에서 점이나 치고 살텐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여러 돌봄을 받아가며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인사 할 때에는 왠지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어옴을 느껴 눈시울이 젖기도 하였다.
모쪼록 원생들이나 봉사회원들이나 모두 건강하시고 지금의 이 마음 변함없이 오래도록 봉사활동을 이어나감으로써 작은 행복이나마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모두에게 새삼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