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공짜 달력' 찾아 삼만리

"은행 달력을 집에 걸어놓으면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지점 네 곳을 돌았는데 달력을 못 구했어요."

울산에 사는 주부 박동희(55)씨는 최근 큰맘 먹고 8만원짜리 달력을 샀다. 일본 인테리어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원목(原木) 달력'으로 반(半)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달이 바뀔 때마다 날짜가 찍힌 원목 블록을 요일에 맞게 교체하면 되는 것이다. 박씨는 "동네 은행에 갔는데 '올해 달력을 적게 찍어 11월 말에 다 떨어졌다'고 하더라"며 "달력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비싸지만 인테리어 소품도 되고 오래 쓸 수 있는 걸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달력 발행 물량을 줄이면서 달력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왕 무료 달력을 못 구할 바에는 인테리어를 생각해서 고가(高價)의 달력을 사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아예 2017년도 달력을 만들지 않았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요새는 다 모바일로 달력을 보기 때문에 굳이 돈 들여 종이 달력을 찍어도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며 "은행마다 달력 발행을 점점 줄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내년 달력 357만부를 찍어 전국에 배포했지만, 몇몇 지점에선 지난달에 일찍 동이 났다. 지난해에 비해 20만부 줄여 발행한 탓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도 지난해보다 달력 제작 물량을 줄였다.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달력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달력을 사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쇼핑몰 지마켓은 "올해 12월 한 달간 달력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5% 늘어났다"며 "달력이나 다이어리 등 찾는 사람들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비싼 달력을 사기보다는 직접 자신만의 달력을 만드는 '달력 DIY(Do It Yourself)'도 유행이다. 자기 개성을 살려 집안 장식용으로 쓸 수 있는 달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열린 '달력 DIY 교실'에는 주부 20여명이 모였다. 수강료와 재료비로 6000원을 내고 각자 자신의 달력을 만들었다. 연령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수강생들은 자신의 결혼기념일과 양가 부모님 생신, 시댁 제삿날 등 각종 경조사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고 축하 문구 등을 손글씨로 채워넣었다. 달력 DIY 강사 지미정(46)씨는 "올해에는 '달력 구하기가 힘들어 차라리 직접 만들고 싶다'는 주부들의 요청이 늘면서 12월 한 달에만 150명 넘는 수강생이 찾아와 직접 달력을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참여한 수강생 남모(여·71)씨는 "벽에 걸어놓을 달력 하나 공짜로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바람에 '내 맘에 쏙 드는 달력을 직접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왔는데 평생 못 잊을 '작품'이 완성됐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영업 사원들은 줄어드는 무료 달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달력을 구해달라'고 조르는 고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용 학습지 회사에서 7년간 방문 교사로 일한 유모(30)씨는 "올해는 '매년 나오는 달력이 없다'며 한 부만 구해달라는 학부모들이 유독 많다"며 "결국 개인 돈을 들여 달력을 사서 학부모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