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그때처럼… 상받고 기뻐할 수 있길"

"대종상이 이대로 불명예스럽게 없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한마음이 돼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에 변화는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27일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의 배우 이병헌은 "상 받는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대종상은 모두가 권위를 인정하는 영화상이었다. 그러나 심사와 수상작 선정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거듭되며 조금씩 위상이 추락했다. 지난해엔 주최 측이 "시상식에 불참하면 상도 안 준다"고 했다가 '갑질'로 지탄받았고, 배우·감독·스태프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주인공 없는 시상식'으로 전락했다. 올해 역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손예진(덕혜옹주)을 비롯, 많은 수상자와 후보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부산행'과 '아가씨' 등은 아예 영화제에 출품도 하지 않았다. 이병헌이 참석했으니 남우주연상을 받으리라는 걸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병헌은 수상 소감의 기쁨보다 '대종상을 함께 지키자'고 호소하는 데 더 큰 정성을 쏟았다. 그는 "20년 전 제가 대종상 신인상을 받을 때 설레고 영광스러웠던 마음이 기억난다. 20년 뒤 후배들도 그런 마음으로 이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종상을 이제 우리가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부자들'은 이날 시상식에서 총 23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 기획상(김원국), 감독상과 시나리오상(우민호),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제작자인 김원국 대표는 "중고생 시절 충무로역을 통해 대한극장에 갈 때마다 그 벽에 붙어 있는 대종상 수상 사진들을 보곤 했다. 사람도 몸에 들어온 나쁜 바이러스를 잘 이겨내면 더 건강해지듯, 대종상 영화제와 대한민국도 더 건강한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곡성'(감독 나홍진)은 "뭣이 중헌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아역 배우 김환희가 신인여우상을 받는 등 5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도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행사를 주관한 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은 작품상을 시상하려다 잠시 목이 메기도 했다. 그는 "배우들 보이콧 여파에다 조직위의 재정적 지원 없이 가난한 영화인들의 힘만으로 준비하느라 힘들고 막막했다"며 "이러다 정말 올해는 대종상 못 하는 것 아닌가 절망도 했지만, 최상은 아니라도 최선의 영화제 만들자고 온몸으로 뛰어준 영화인들 덕에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아쉬움도 컸지만, 심사 공정성 논란이 사라진 것은 작지 않은 성과였다. 정중헌 심사위원장은 "17명 심사위원이 8일 동안 출품작을 다 보면서 최대한 심사에 공정성을 기하려 애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