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 본 엄마, 손에 든 양배추를 내려놨다

"설 연휴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가격은 둘째 치고 육지로 보낼 물량이 턱없이 모자라요. 당근은 50%, 무는 30% 생산이 줄었어요."

제주 구좌농협 양성집 센터장의 주 임무는 농가를 돌며 당근·무·감자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시장에 나오는 당근·무·감자의 95%가 제주산인데, 지난 10월 태풍 피해로 최근 출하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동해안 오징어 물량 확보도 비상이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수산업체의 이윤선 팀장은 "오징어가 작년보다 30~40% 덜 잡힌다"며 "가격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어획량이 너무 줄어 수산업체들의 피해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태풍으로 제주산 겨울 채소 수급 비상

조류인플루엔자(AI)로 수급 대란을 겪고 있는 계란뿐 아니라 다른 농축수산물의 가격도 급등, 새해 벽두부터 '장바구니 물가'에 경고등이 켜질 전망이다. 당장 수급 부족으로 제주에서 나는 당근·감자·무는 계란 가격보다 더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9일 기준 무 1개 가격은 3219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10원) 가격의 2.5배로 폭등했다. 당근 1㎏ 가격은 5855원으로 작년 이맘때(2523원)보다 132% 올랐다. 양배추도 한 포기에 5614원으로 130% 상승했다. 겨울 양배추 역시 제주에서 집중 재배된다. 지난 10월 제주를 덮친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제주 지역 대부분의 밭작물이 심각한 수해(水害)를 입었다. 문제는 겨울철 내륙 지방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당근·감자 등이 시장에 풀리는 2월 중순까지 제주산을 대체할 물량이 없다는 것이다. 12월 말부터 유통되는 무 역시 대부분이 제주산이다.

감자는 그나마 지난가을 수확한 강원도산 비축 물량이 있어 가격 상승 폭이 33%에 그쳤다. 그러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1월 중에 비축 물량이 소진될 것으로 보여, 2월 말 내륙 하우스 감자가 나올 때까지는 '감자 보릿고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계란·채소·수산물 가격 폭등에 설 상차림 물가 덩달아 오를 수도

오징어·갈치 등 해산물 가격도 비상이다. 오징어 가격은 전년 대비 20%, 갈치는 64% 올랐다. 수협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으로 오징어 산지가 교란돼 개체 수가 준 데다 최근 인접한 북한 해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 조업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주 수입처인 포클랜드(남미)의 올해 오징어 어획량도 70% 줄었다.

갈치의 경우 지난 6월 한일(韓日)어업협정 결렬로 우리 어선이 대한해협 인근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조업할 수 없게 되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수협은 대한해협 일대의 수온이 평년보다 2도 높아진 것도 어획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대형마트는 오징어·갈치 물량을 구하기 위해 비상령이 떨어졌다. 공재훈 이마트 과장은 "제3의 오징어 산지를 찾기 위해 동남아 수산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갈치는 아랍에미리트·인도네시아 등으로 산지를 다각화했다"며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부터 농심은 라면 제품 가격을 평균 5.5% 인상했다. 지난달에는 오비맥주가 맥주값을 6% 올렸고, 이달엔 하이트진로가 6.33% 인상했다. 한국코카콜라도 지난달 콜라·환타 등 탄산음료 출고가를 5% 올렸다. 유통업계는 가뜩이나 주요 식품·음료 가격이 오른 데 더해 계란과 각종 채소·수산물의 가격까지 급등하자 설 상차림 물가도 덩달아 오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는 "지난 10월 태풍이 제주를 강타했을 때부터 겨울 채소 가격 상승은 예견됐던 일인데, 정부에서 신선식품 물가 상승에 앞서 어떤 대응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물가 상승 요인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대비해 신선식품의 수입처를 늘리는 등 정부 차원의 선제적 물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