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30 15:10

나만 예민하였던 것일까.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에서 마주했던 조선인위령탑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은 이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폭이 떨어진 지점으로 그 당시의 피해 상황을 원폭자료관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나가사키 시민의 평화를 염원하는 높이 9.7m의 평화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늘린 왼손은 평화를, 살짝 감은 눈은 원폭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임을 제작자인 나가사키출신의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北村西望)는 말하고 있다. 매년 8월 9일 원폭의 날에는 이곳에서 평화 기념식이 개최되며 공원 입구에는 물을 찾아 헤맸던 소녀의 수기가 세워진 평화의 샘과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기념비가 늘어서 있다. -나가사키 관광협회 자료에서 발췌

평화의 공원 안에 있는 원폭자료관은 피폭 당시 우라카미 형무소가 있던 자리로 폭심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공건물이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원폭이 투하된 시간에 형무소 내에 있던 직원 19명과 관사에 있던 가족들 35명, 수형자와 형사피고인 81명, 총 135명이 즉사를 하였다. 그 당시 이곳에 중국인 수감자 32명과 한국인 수감자도 13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현재 평화의 공원은 나가사키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장소이다. 원폭 피해국임을 자청하는 일본은 평화의 공원을 세우고 자신들의 피해현상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핵을 반대하는 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공원에는 우리 조선인들이 갇혔던 감옥의 흔적도 남겨져 안내문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평화의 조각상 앞에는 초등생들과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까지 단체로 찾아와 질서정연하게 자신이 참배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일부 단체들은 그 곁에서 정신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의 행동은 질서정연하였고 진정으로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이라는 인식을 전달하였다. 공원에서 마주한 모든 흔적이 그 당시의 상황을 철저하게 기억하자는 의미로 전달되어 조선인 위령탑을 찾기로 하였다.

피폭 당시의 피해 상황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설명들로만 상상할 수 있으리만큼 평화의 공원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공원비석에는 민족이나 인종의 구별 없는 인간을 강조하는 내용의 비문이 있었으며 공원 안 분수대의 하얀 물보라는 그날의 참상을 잊은 듯 선명한 반짝이고 있었다. 피폭 당시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숫자가 삼만 오천 명이었고 피해를 본 사람들의 수가 만여 명에 이른다. 나라가 국권을 회복하고 난 지금에도 평화로운 공원 영역에는 조선인 피폭자들의 영혼을 위로할 몇 평의 땅도 없음을 확인하면서 그 당시 주권 없는 식민지 백성이 겪어야 했을 참혹함과 처절함을 생각하였다.

공원중심지에 있는 분수대와 평화 기념상을 거치면서 외곽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조선인 위령탑을 찾기 시작하였다. 공원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지역에서 발견한 중국인 위령탑 아래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려갔으나 조선인위령탑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시간여를 공원 외곽을 돌다가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계단을 내려와 차도를 건너는 곳에 몇 개의 비석이 눈에 띄어 다가갔으나 조선인 위령탑은 그곳에도 없었다. 인터넷 정보에 의한 후미진 곳이라는 표현에 아래쪽 계단을 내려와 설마 저곳에 라고 생각되는 마을 어귀 왼쪽 계단 옆에 숨어있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는 1m 정도의 위령탑을 발견하였다. 그 위령탑조차도?나가사키 시에서 세운 것이 아닌 일부 양심적인 일본인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으로 안내문에는 조선인들의 인권을 위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먹으러 갔었던 나는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실감하면서 울컥하는 분노로 목이 메여왔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전날 밤 나가사키의 우울한 기억으로 가슴에 또 하나의 이별을 담는다. 제주를 닮은 큐슈의 바람 소리와 바다 냄새를 따라가 역사를 통하여 만나게 되는 그네들이 지닌 특이한 삶의 시선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였었다. 늘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반복하게 하는 이절적인 삶의 다양함은 그네들이 지닌 자연환경에 대한 현실적응력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미지수인 평화의 빈 공간을 숙제처럼 남겨두게 하는 나가사키는 오래도록 쓸쓸한 기억으로 남겨지겠지만, 여행을 통하여 배워가는 삶의 이치들이 있다. 나가사키 카스테라와 조선인 위령탑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분법의 논리임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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