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카톡 연하장 스트레스'

대기업에 다니는 최모(29)씨는 새해 첫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밤새 카톡(카카오톡)으로 받은 메시지 수십 통에 일일이 답장하느라 1시간여를 소비했다. 최씨가 받은 메시지 대부분은 'HAPPY NEW YEAR' 등이 적힌 신년(新年) 인사 이모티콘으로, 주로 직장 상사나 선배가 보낸 것이었다. 최씨는 "선배들은 이모티콘 하나 달랑 보내면 되지만, 말단 사원들은 두 줄 석 줄 정성 들여 인사말을 써야 하니 골치 아프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26)씨는 "직장 상사에게 새해 인사 메시지를 안 보냈다가 '카톡으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되는데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편지나 이메일로 주고받던 새해 인사를 카톡 같은 SNS로 간편하게 주고받는 사람이 늘면서 '카톡 새해 인사 피로감'이 번지고 있다. 윗사람은 이모티콘이나 간단한 인사말을 보내면 되지만, 아랫사람으로선 무성의하게 보냈다가 '정성이 부족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라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 조보경(여·25)씨는 지인 15명에게 보낼 인사말을 만드는 데만 3시간을 썼다. 조씨는 "지인마다 각각 다른 내용으로 인사말 15줄을 채운 뒤 맞춤법·띄어쓰기 등 실수가 없는지 수십 번 확인했다"며 "카톡으로 인사를 전한다고 해서 대충 보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작년 말 발행한 2017년 판 연하장은 320만장으로 1년 전보다 160만장 줄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해마다 우편 연하장 수요가 줄어 발행량도 매년 100만장 이상씩 줄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 연하장이 팔리지 않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대형 서점 반디앤루니스는 지난해 초 5개 정도 설치했던 연하장 매대를 올해는 아예 없앴다.

우편 연하장이 사라지는 대신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한 연하장 서비스는 늘어나고 있다. 구글 앱 장터인 '구글플레이'엔 2017년 모바일 연하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이 10여 개 등록돼 있다. 새해와 관련된 이미지에 인사 문구를 넣거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 이어' 등 음성이 나오는 연하장을 만들어 SNS를 통해 공유하는 식이다. 카카오톡은 새해 인사와 관련된 이모티콘 서비스 50여 가지를 판매하고 있다.

메신저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접속자가 급증하면서 4200만명이 쓰는 국내 1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은 1일 새해 시작과 함께 마비됐다가 38분 만에 복구됐다.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났을 때도 카카오톡은 90분가량 불통(不通)됐다. 이용자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불통되면서 어떻게 '국민 메신저'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아무 감동 없는 상투적 카톡 메시지를 보내느니 차라리 개성 있는 종이 연하장을 쓰는 게 낫다"는 '아날로그 회귀족'도 등장했다. 연하장 제작 업체인 '보자기카드'는 올해부터 고객 요구에 맞춰 연하장을 소량으로 주문 생산하고 있다. 같은 디자인으로 대량생산한 연하장이 아니라 캘리그래피(예술적으로 쓴 손글씨)나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이 그려진 다양한 형태의 연하장을 고객이 직접 선택해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본인이 손수 디자인해 주문 제작하는 DIY(Do It Yourself) 연하장도 인기다. 보자기카드 이왕수 대표는 "기업 등에서 단체로 주문하는 연하장은 5~10% 정도 줄었지만, 소량 세트 상품 판매량은 작년보다 1.5배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