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걱정하며 울먹인 정유라, 의혹엔 딱 잘라 "엄마가 다했다"

2일 오후(현지 시각) 덴마크 북부 올보르시(市) 지방법원에 도착한 정유라(21)씨는 전날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입었던, 모자가 달린 회색 패딩코트를 그대로 입고 법정에 나왔다. 안에는 '스타 워즈(STAR WARS)'라는 황금색 글자가 새겨진 검정 티셔츠를 입었다. 최재철 주덴마크 대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이날 법원 심리를 지켜봤다.

올보르는 덴마크에서 셋째로 큰 도시이지만 인구는 21만명 정도다. 한인 교포는 많지 않고 국제 항공편이 많아 숨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도시 북부 지역에는 덴마크에서 손꼽히는 승마장이 있다.

이날 법원 심리는 덴마크어로 진행됐다. 판사와 검사, 변호인이 덴마크어로 물으면 통역이 영어로 정씨에게 전달했고, 정씨는 실내에 있는 사람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영어로 대답했다. 정씨의 영어는 유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의사 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정씨는 법정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삼성은 스폰서로 말을 대는 것이고 나는 말을 탈 뿐" "엄마(최순실)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 정말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정씨는 '지금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19개월 된 아이가 있다"며 울먹였다. 이어 "아이가 11개월 됐을 때 아빠가 떠났고, 접촉이 없다"고 했고, '아기를 볼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오직 아이 걱정만 한다"며 "(한국) 경찰이 아이와 머물 수 있게 해주면 언제든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이날 심리 중 10분씩 두 차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정씨는 두 번째 휴식 시간 때 한국 취재진이 다가가 질문을 던지자 즉석 인터뷰에 응했다. 옆에 있던 통역이 "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아니다. 내가 말을 하겠다"고 했다.

정씨는 한국 취재진이 2015년 이화여대 입학 및 학점 취득 의혹에 대해 묻자 "자퇴를 해달라고 어머니한테 말했는데 자퇴가 안 됐다"며 "(2015년에) 아이를 낳고 바로 독일로 왔기 때문에 교수가 누군지 이런 것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또 "(출석을 하지 않아) 2016년에 제적이 될 줄 알았다"며 "2016년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가서 최경희 총장과 류철균(구속) 교수를 만났다. 그러고 난 후에 아예 몰랐는데 학점이 나온 거다. 중간에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씨는 최씨와 함께 독일에 세운 회사 비덱을 통해 삼성으로부터 80억원가량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중요한 부분에) 포스트잇이 딱딱딱 붙어있는 종이(계약서)에 (엄마가) 사인만 하게 해서 내용은 몰랐다"고 했다. 삼성이 구입한 10억원 넘는 명마(名馬)를 받은 것도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삼성이 선수 6명을 뽑아 말을 지원한다는데 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최순실 의혹이 터지고) 삼성에서 차와 말을 다 갖고 간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해외 재산 도피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한국과 독일에서 세금도 다 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임신 중인 데다 어머니 최씨와 사이가 틀어져 연락을 안 하던 때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선 전해 들은 게 없으며, "박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아버지가 (박 대통령과) 일했던 초등학생 때"라고 했다. 정씨는 박 대통령에게 영양제 주사 등을 놔준 것으로 알려진 '주사 아줌마'에 대해 "주사 아줌마 백 실장으로 나오는 분은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했고,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최씨가 운영했던 서울 강남의 커피숍 테스타로싸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독일에 머물 당시 조력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에 대해 묻자 "그렇게 실명으로 물으시면 좀…"이라며 "그분은 연락 안 된다. (윤씨가) 책임지기 싫어하니까"라고 했다. 정씨는 자신의 어머니 최씨의 국정 농단과 관련한 국내 언론 보도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씨는 이날 판사가 "1월 30일까지 구금을 연장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깊은 한숨을 쉬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정씨는 항소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정씨를 만나 여권반납명령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씨가 9일까지 여권을 반납하지 않으면 10일 0시를 기점으로 정씨 여권이 무효화되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