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결백을 입증하라… 72시간 內"

"우리는 자네 부인이 독일 스파이라고 굳게 믿고 있네."

11일 개봉하는 영화 '얼라이드(Allied)'에서 영국 정보국 장교 '맥스 바탄'(브래드 피트)은 상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바탄은 1942년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의 비밀 요원 '마리안 보세주르'(마리옹 코티아르)와 함께 독일 대사 암살 작전을 수행하다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임무를 마친 뒤 런던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고 딸까지 낳았다. 아내의 무고를 입증하기 위해 남은 기한은 고작 72시간. 사흘 내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직접 아내를 처단하든지, 아니면 함께 반역죄로 몰릴 수밖에 없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첩보물 '얼라이드'는 영화 촬영 도중 터져 나온 남녀 주연 배우들의 '불륜설' 때문에 개봉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 최고의 커플'로 불렸던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의 직간접적인 파경(破鏡) 원인을 제공한 영화라고 할까. 피트와 졸리가 2005년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촬영하면서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파경 역시 너무나 영화적이다.

'포레스트 검프'와 '백 투 더 퓨처'의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얼라이드'의 러닝 타임 2시간을 정확히 둘로 나눠서 2개의 작전을 보여준다. 카사블랑카의 독일 대사 암살 작전과 아내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주인공 바탄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카사블랑카의 작전은 후반부 남편의 고군분투(孤軍奮鬪)를 강조하기 위한 도입부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감독은 지극히 공들여서 1시간 동안 이 도입부를 끌고 간다. 독일 나치 장교들이 득실거리는 심야 재즈 바 장면이 보여주듯, 도입부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한 경의(敬意)의 표현이다. 동시에 두 작전이 서로 다른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된 한 남자의 인생사(人生事)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암시한다.

저메키스 감독은 실사(實寫)와 애니메이션을 뒤섞었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나 미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포레스트 검프'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테크니션으로 정평이 높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화려한 기교를 내려놓고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승부를 건다. 차포 떼고 두는 장기처럼 불리한 처지를 자청하는 듯싶지만, 냉혹한 첩보물의 외피(外皮)를 벗고 훈훈한 가족극이라는 속살을 드러내는 후반부에서 감독의 정공법은 전작들보다 환한 빛을 낸다.

런던 인근 공항이라는 결말의 배경은 또다시 이 영화가 '카사블랑카'의 현대적 재해석이자 변주(變奏)라는 걸 강하게 드러낸다. 비행기의 이륙이든 총성이든 사건 현장을 떠나는 여자 주인공과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 주인공, 그를 위로하는 상관이라는 인물 구도는 물론 활주로라는 배경도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교를 아껴두던 저메키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카사블랑카'를 숨은 그림 찾기처럼 활용하면서 영화적 기교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내 감정은 항상 진심이에요. 그게 제가 살아남은 비결이죠." 여주인공 마리안의 대사는 영화 말미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예언이 된다. 보세주르(Beausejour)라는 마리안의 프랑스 성(姓)은 '아름다운 체류'라는 뜻이다. 삶은 '짧지만 아름다운 머무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