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才無能? 실패하면서 더 강해져요"

4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점심때의 나른하던 공기가 팽팽해졌다. 배우 구혜선(33)씨가 지하 1층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취재진과 일반인 50여 명이 몰려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구혜선씨의 개인전 'dark YELLOW' 사전 공개 행사가 열렸다. 전시는 5일부터 2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실 한쪽 벽에는 구혜선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스물넷이었던 2008년 감독에 데뷔해 크고 작은 독립영화 7편을 만든 감독, 뉴에이지 음악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올린 뮤지션, 전시회를 9번 연 작가. 모두가 구혜선이다. 이날 구씨는 미술 작가로 카메라 앞에 섰지만 취재진은 연예 매체가 대부분이었다. 이 전시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은 온라인에 뼈 있는 댓글을 남겼다. '안타까운 다재무능(多才無能).'

"저도 봤어요. 핑계 대고 싶지 않아요. 이번 전시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겠죠. 어차피 욕은 먹을 거고." 구씨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안 돼도 괜찮아요. 전 더 강해졌고요. 살면서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을 뿐이에요."

357㎡(약 108평) 공간에 그림 50여 개가 걸렸다. 전시 제목 'dark YELLOW'처럼 노란색이 유독 많다. 노랑은 노랑인데 어두운 노랑이다. 구씨는 "노랑은 내게 어린 시절 꿈을 생각하게 하는 색이지만 어둡게 느껴진다"고 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그녀는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큰 눈망울을 가진 '캔디형' 여고생 연기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배우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지 늘 고민이 됐다"고 했다. "내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그림도 그리고 영화 연출도 하게 됐어요." 구씨는 "처음 실패했을 땐 자존감이 떨어지고 희망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동료 배우 안재현(30)과 결혼 이후 공식 석상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구혜선은 "어릴 때부터 연기자로 살다 보니 사랑받는 것에 집착했는데 이젠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했다. 이 부부는 케이블 프로그램 '신혼일기'에서 신혼 생활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녀는 "늘 부부가 좋을 수만은 없는데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주려다 엄청 싸웠다"며 "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된 그림에는 유독 삼각형이 많았다. "삼각형은 제일 적은 선으로 이뤄진 도형"이라며 "모양이 어찌 되든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삶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꿈이 생기는 것.' 전시 한쪽 벽을 점령한 문구였다.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꿈은 꿀 수밖에 없는 거죠.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실패하고 또 그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내가 누군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는 것." 구혜선씨는 "해답을 찾는 과정에 있는 관람객이 내 전시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