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心 12년… "담배 사러 은행 간다 생각"

"12년간 담뱃값 모은 돈입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좋은 일에 써주세요."

지난달 5일 서울 노원구 성민복지관. 자동차 영업 사원 이원창(50)씨는 현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직원에게 건네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씨는 13년 전까지 담배를 하루 두세 갑씩 피우는 골초였다. 스트레스를 술·담배로 풀다 보니 건강도 나빠져 몸무게가 100㎏까지 불었다. 2004년 말 "이대로 가면 폐가 망가진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금연(禁煙)을 결심했다.

그는 2005년 첫날부터 금연에 들어가면서 "담뱃값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자"고 다짐했다. 당시 담배 두 갑 가격인 4000원을 매일 은행에 저축하기 시작했다. 금요일에는 주말분까지 1만2000원을 넣고, 휴가 때는 은행에 못 가는 날만큼 미리 저축했다. 담뱃값이 오른 2015년부터는 하루 5000원으로 올렸다. 이렇게 '작심(作心) 12년' 동안 모은 돈이 원금과 이자를 합쳐 1900만원을 넘었다.

'담배 사러 은행 간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저축은 이제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됐다. 이씨는 "담배 끊고 몸을 관리했더니 체중이 85㎏까지 빠졌다"며 "통장은 살이 올랐지만 몸은 군살이 빠져 총각 시절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이씨의 단골 은행 직원은 "매일 4000~5000원 저금하는 걸 보고 참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일에 쓸 돈이라는 걸 알고 감탄했다"고 했다.

이씨는 금연한 지 11년째인 2015년 12월 처음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첫 기부도 성민복지관이었다. 영업하러 오가는 길에 자주 본 복지관이었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선뜻 기부하는 게 아깝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씨는 "금연으로 건강을 얻었으니 내가 오히려 큰돈을 번 셈"이라며 웃었다. 복지관은 이씨가 두 차례 기부한 1000만원을 발달장애인 복지에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