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끼고, 대출받고… 경고등 켜진 '갭 투자'

지난달 회사원 신모(37)씨는 분양받은 지 4개월 된 대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분양가 그대로인 3억원에 되팔았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신씨는 서울에도 전세를 끼고 산 아파트가 한 채 있다. 그는 "대출이 2억8000만원이나 되는데 이자 부담이 버거워 대구 물건부터 급처분했다"면서 "갭 투자로 집 몇 채 장만해 노후준비를 하려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3년 사이에 유행하던 '갭(gap) 투자'가 부동산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갭 투자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매매가격과 전세금의 차액을 투자해 집을 사는 투자 방법이다. 매매가 3억원짜리 주택의 전세금 시세가 2억7000만원이라면, 3000만원을 들여 집을 사는 것이다. 이런 식의 투자 성공담을 쓴 '나는 갭 투자로 300채 집주인이 되었다'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등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직장인이나 주부 사이에서도 갭 투자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갭 투자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好況)을 누리며 집값과 전세금이 계속 올라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이다. 상당수 갭 투자자들이 대출을 '지렛대' 삼아 집을 사들인 것도 위험 요소이다. 송인호 KDI 박사는 "최근 유행한 갭 투자는 대출 의존도가 너무 높아 금리가 오름세로 바뀌거나, 집값이 조금만 하락세로 돌아서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경기 꺾인다는데 '갭 투자' 괜찮나

부산시 수영구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는 최근 아파트 매물이 수십건 쌓여 있다. 작년 10월만 해도 '전세 끼고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나오면 무조건 사겠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산은 지난해 분양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집값과 전세금이 많이 올라 전국에서 갭 투자 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정부가 11·3 부동산대책과 각종 대출 규제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 공인중개사는 "한 번에 집 4채를 팔아달라고 맡긴 사람도 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추가 금리 인상과 주택 경기 전망도 밝지 않은 올해는 갭 투자가 '지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입주 물량이 많거나 미분양을 겪는 지역의 경우 세입자를 찾지 못하거나 전세금이 하락할 경우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며 "여윳돈이 없는 서민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집값이 내리면, 갭 투자로 사들인 아파트가 한순간에 '깡통주택'으로 전락할 수 있다. 깡통주택은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의 전세금과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2014년에는 집값의 80%까지 담보 대출을 받아 빌라·아파트 등 15채를 샀던 투자자가 집값 하락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출 줄이고, 저평가된 매물 찾아야

실제로 서울에서 전세금이 내리면서 갭 투자자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부동산114'는 최근 서울 성북구의 전세금이 내린 원인으로 "전세 계약이 만료된 갭 투자 물건이 매물로 나오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센터장은 "작년 말부터 주택 거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집값도 내림세가 유력해 올해는 갭 투자로 돈 벌었다는 얘기 듣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의존도를 줄이고 저평가된 지역을 찾는다면 여전히 갭 투자가 매력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임동권 하나부동산중개 대표는 "올해 투자 환경이 안 좋다고 하지만, 초등학교가 있는 서울 역세권 지역의 신축 빌라에 대한 갭 투자가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서울처럼 전세 수요가 꾸준한 지역과 주택 공급이 급증해 미분양이 쏟아지는 지역과는 분명한 온도 차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갭(GAP)투자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전세금과 매매가격 차액만으로 집을 사들이는 투자 방법. 소액으로 집을 여러 채 살 수 있어 집값 상승기에는 큰 차익을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집값 하락기에는 큰 손실이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