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AI 영향 받는데… 전통시장 계란값, 왜 대형마트보다 2배 비싼가

양계 농가에서 계란을 구입해 서울·경기 지역 도매상에 공급하는 계란 수집상 김모(62)씨는 최근 거래 농가로부터 "1판(30알)에 9000원을 받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한양계협회 고시가격 6360원(4일 기준)보다 41% 비싸다. 김씨는 그동안 7곳의 양계 농가와 거래했는데, 이번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4곳이 전량 살처분을 했고, 2곳이 이동 제한 처분을 받았다. 계란 공급처는 이곳이 유일하다. 김씨는 "계란 시세는 농가에서 부르는 게 가격"이라며 "비싸더라도 물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거래처(도매상)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계란을 사온다"고 했다.

◇부르는 게 값인 산지 가격

4일 오후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선 계란 1판(30알)을 698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 종로구의 한 재래시장에선 1판 가격이 1만3900원이었다. 유통 업태별로 계란값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산지 공급 가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의 경우 대형 농가와 직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계란을 사들인다. 계약 기간은 1년 이상이고, 구입 물량도 많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계란값이 오른다고 해서 농가가 장기간 거래해 온 대형 마트에 웃돈을 요구하진 않는다"고 했다. 대형 마트의 경우 고시가(6360원) 수준으로 계란을 구입한다. 여기에 약 10%의 마진을 붙여 7000원 선에 판매하고 있다.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평소(마진율 20%)보다 마진을 줄였다.

반면 중소 수집상들은 양계협회 고시가로 계란을 구매하기 어렵다. 계란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고시가에 웃돈을 얹어줘야 구매가 가능하다. 한국양계농협 관계자는 "물량이 부족해진 식품업체 등에서 농가들에 '고시가보다 1500원 더 주겠으니 우리한테 팔아라'는 식의 단체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며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올리자 중소 수집상들도 웃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했다. 충남 지역의 수집상 고모(66)씨는 계란을 농가로부터 1판당 7000원에 공급받고 있다. 그는 "20년 넘게 거래해 오던 농가라 내 사정을 봐준 것"이라며 "거래 농가에 따라 수집상의 구매 가격은 1판당 7000~9000원으로 들쭉날쭉하다"고 했다.

수집상이 계란을 9000원에 들여오면 이를 보통 9500원 정도에 도매상에 판매한다. 도매상은 포장·세척 등을 해 소매점에 1만1000~1만2000원에 넘긴다. 소매점은 약 20%의 마진을 남기고 1만3000원 이상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계란값이 2배 가까이 벌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동네 시장에 가려다가도 대형 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계란유통센터(GP센터) 확대해 유통구조 개선해야

AI 등으로 계란값이 출렁이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계란유통센터(GP센터)를 확대하는 등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GP센터는 지역별로 계란을 수집해 선별·포장하는 대규모 집하장으로, 규모가 큰 양계조합이나 대형 농장 등에서 주로 운영하고 있다. 계란 생산부터 포장·세척까지 한곳에서 처리되는 구조다. 현재 전국에 약 50곳의 GP센터가 있다. 이를 통해 약 35% 정도의 계란이 유통되고 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공판장인 GP센터를 통해 계란이 유통되면 공식 거래 가격이 집계돼 유통이 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수집상들이 직접 농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AI 등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GP센터를 통한 유통 활성화를 위해 논의중이나, GP센터를 의무화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