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쉴레의 삶… 흔들리는 청춘을 파고들다

"자네가 보는 걸 나도 봤으면 좋겠네."

"난 모든 걸 꿰뚫어 보니까요."

거장(巨匠) 구스타프 클림트의 칭찬에 당돌히 응하는 이 청년의 이름은 에곤 쉴레(Schiele, 1890~1918)다. 28세에 요절했지만, 스승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숱한 걸작을 남겼다.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했다. "내가 너무 멀리 앞서가서 사람들은 나의 강렬한 작품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힐 겁니다."

기괴하고도 에로틱한 인체 묘사로 20세기 초 유럽 화단에 충격을 던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가 20~30대를 사로잡고 있다. 시발점이 된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지난 22일 개봉한 지 열흘 만에 2만5000명 관객을 돌파했다. 스크린 수 50개 이하로 개봉한 다양성 영화 중 최단 기간 세운 기록이다. 시네큐브와 CGV에 따르면 관객 10명 중 7명이 20~30대이고, 그중에서도 20대 여성들이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나타났다.

낯선 청년 에곤 쉴레는 어떻게 한국 관객을 매료시켰을까. 티캐스트 최경미 차장은 일상화된 유럽 여행을 꼽았다. "유럽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는 젊은 세대에게 에곤 쉴레는 낯설지 않아요. 빈으로 클림트를 보러 갔다가 에곤 쉴레에 반해 돌아왔다는 젊은이들이 많지요." 인간 내면에 웅크린 욕망을 뒤틀린 육체와 광기 어린 표정, 음산한 색감으로 표현한 쉴레의 그림도 젊은 취향을 파고들었다. "예쁘고 화사한 그림들이 넘치는 요즘 쉴레의 격렬한 터치, 꺾이고 일그러져 신경증적으로까지 보이는 그림들이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매독으로 죽은 아버지, 어머니와의 불화, 가난과 전쟁으로 이어진 짧은 생애에 예술혼을 불태운 쉴레의 삶도 어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취업 절벽, 부조리한 권력을 목도한 젊은이들은 움푹 파인 눈, 주름으로 가득한 청년 쉴레의 자화상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염세와 반항이 바탕에 깔린 에곤 쉴레의 그림은 이른바 '헬조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기성체제에 대해 갖는 불신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쉴레가 살았던 1900년대 초 오스트리아 역시 시대가 원하는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죠. 겉으론 예의와 규범을 말하면서도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만연했으니까요. 쉴레는 그 모순과 개인적 삶의 고통을 에로티시즘으로 분출해냈죠."

불안한 시대, 흔들리는 자아를 드러내는 쉴레의 그림은 문학작품 표지로도 애용됐다.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이 대표적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민음사) 표지로 사용돼 더 유명해진 이 그림에서 에곤 쉴레는 거만하고도 냉소에 찬 눈으로 세상을 응시한다.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 표지도 쉴레가 그린 '네 그루 나무들'이다. 가늘고 시들어 곧 부서질 듯한 나무들이 우울하게 서 있는 풍경화다.

'오스트리아 강동원'이란 애칭을 얻을 만큼 잘생긴 주연배우 노아 자베드라의 뛰어난 연기도 쉴레 인기에 한몫했다. 관람 후기엔 "남자주인공 감상만으로도 별 네 개 반"이란 호평이 이어졌다. 스타들도 '쉴레 사랑'에 가세했다. 빅뱅의 탑은 인스타그램에 쉴레 작품 '칼의 초상화'를 올렸고, 배우 원빈은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드로잉해 공개했다.

2018년 100주기를 앞두고 미술계에서도 에곤 쉴레전(展)을 기획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클림트, 쉴레, 코코슈카 등 '빈 분리파'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변선근 대표는 "클림트와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쉴레는 독특한 인물 드로잉과 스케치, 표현력 뛰어난 격정적인 그림들로 한국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