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통령·최순실 강요로 지원했을 뿐… 대가 요구한 적 없다"

삼성은 9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의 1·2인자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이 동시에 특별검사팀에 소환되자 비상이 걸렸다. 최 부회장은 인사·기획 등 그룹 안살림을, 장 사장은 대관(對官) 등 대외 업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다. 특검은 "두 사람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했으나 조사 중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수 있다"며 삼성을 압박했다. 이재용 부회장 소환도 임박한 분위기다.

특검이 삼성을 겨누는 것은 '대가를 노린 뇌물'이다. 작년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 측을 지원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은 청와대와 최씨 측의 강요에 의해 지원했을 뿐 합병 대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승마 지원을 강하게 독려받은 시점 자체가 삼성물산 합병 의결 이후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원 자체의 부적절함은 인정하지만 박 대통령의 강요와 최씨 측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지원했을 뿐 어떤 대가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대가성은 없다… 박 대통령·이 부회장 독대와 합병 앞뒤 시점 안 맞아

특검은 박 대통령이 제일모직·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두 회사 합병에 찬성하도록 하고, 삼성은 그 대가로 비선 실세인 최씨 측에 말 구입비와 승마 컨설팅 명목으로 약 80억원을 지원했다고 보고 있다. 이게 입증되면 박 대통령과 삼성을 제3자 뇌물죄나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합병 전후로 벌어진 사실관계를 보면 합병과 최씨 측 지원 간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게 된 계기는 2014년 9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였다. 이때 박 대통령이 "삼성이 비인기 종목인 승마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약 10개월 동안 삼성이 승마협회에 지원한 것은 거의 없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25일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이 부회장과 다시 독대하면서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한 일이 없다"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 독대 자리는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결정한 지 15일 후, 합병안이 두 회사의 주총에서 최종 승인된 지 8일 후에 마련된 것이다. 만약 합병 지원을 대가로 승마를 지원하기로 했다면, 박 대통령이 합병이 결정된 시점에서 이 부회장을 질책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삼성 측의 반론이다.

청와대가 삼성 합병에 관심을 갖고 국민연금이 찬성 입장을 결정한 것도 '삼성의 청탁'이 아니라 삼성이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란 게 삼성은 물론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합병이 실패하면 삼성의 경영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사회적으로 컸다"면서 "당시 합병에 대해 보고서를 낸 증권사 22개 가운데 21곳이 '찬성'하는 등 시장에서도 거의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 "권력층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

삼성도 최순실이 독일에 세운 '코레스포츠'와 삼성전자 독일 법인을 통해 컨설팅과 말 구입비 등으로 약 80억원을 지원한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이 부회장도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지원 방식 등이 적절치 못했다. 후회가 막심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최씨 측을 지원한 것은 박 대통령 등 최고 권력층의 강요·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삼성 측의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한국적 상황에서 대통령의 요구에 기업이 맞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의 최순실 지원을 뇌물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정황이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물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