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가감 없이 담아냈다, 전쟁 같은 '아빠 24시'

"그냥 아빠 생각을 안 해."

아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사춘기 딸이 대답한다. 휴대전화에서 아빠 번호까지 지워버린 딸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딸의 싸늘한 반응에 아빠는 눈만 껌벅거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신년특집 SBS스페셜 '아빠의 전쟁'(총 3부)은 앞만 보고 내달리다 어느 순간 집안에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아빠들의 서글픈 일상, 그리고 힘겨운 싸움을 그렸다. 육아나 자녀 교육 문제를 주로 엄마, 여성의 관점에서 다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났다. 가정에서 점점 소외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제작진은 아빠들의 일상에 과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다양한 직종, 각양각색 고민을 가진 아빠들이 등장한다. 거래처 전화가 걸려올까 밤낮 스마트폰만 쳐다보느라 딸이 몇 반인지도 모르는 아빠, 사회생활하려면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며 주말에도 '나홀로' 외출을 감행하는 아빠, 부부가 똑같이 24시간 교대 근무하는 공항보안 직원이라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매일 아침 아내와 '육아 교대식'을 치르는 남자…. 한숨과 눈물이 교차하는 이들의 복닥거리는 하루를 CCTV는 가감 없이 전달한다.

최수현 기자는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보여줘 오히려 현실의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지금처럼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아이와의 관계가 저렇게 되겠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우려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제작진은 정시 퇴근을 유도하는 '칼퇴 프로젝트'와 한 달간 온가족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디너테이블 프로젝트'를 실험한다. 정시에 퇴근한 만큼 밀린 일 때문에 이튿날 새벽에 출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일하다 말고 식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밥만 겨우 한술 뜨고 다시 집을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지지만 아이들은 '갑자기 이상해진' 아빠의 얼굴을 자주 보면서 서서히 마음 문을 열어간다.

엄마 아빠 모두에게 '전쟁'이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한 이렇다 할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3부에서 북유럽 아빠들이 사는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할 모양인데, '스칸디 대디'나 '라테 파파(커피를 들고 유모차 미는 아빠)'는 식상하고도 한가로운 대안이다. 가정과 기업, 국가가 삼위일체 되어 아이를 키우는 복지국가들에서나 가능할 테니! 김윤덕 기자는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강한 한국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얻기 위해 삶의 방식을 바꿔가는 아빠들 모습을 더 많이 담았어야 한다. '칼퇴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기업들의 사례도 더 많이 발굴해서 사회적 대안을 모색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민기 기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아빠들의 시도를 부각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아빠들의 민낯, 절절한 사연들로 공감을 끌어냈지만 '아빠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도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