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째 '돼지' 키워 이웃 도와요

하루 버스 수십 대가 오가는 경남 합천군 시외버스터미널에 '터미널다방'이라는 작은 찻집이 있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이나 방문객이 하루 10여명 찾아와 2000~3000원짜리 쌍화차나 냉커피를 마신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 다방 계산대에는 분홍색 돼지저금통이 놓여 있다. 1988년부터 터미널다방을 운영해온 차민영(59·사진)씨가 매년 군내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 '키우는' 돼지저금통이다. 차씨는 영업이 끝나면 그날그날 매상에 따라 1000~3000원을 이 돼지 저금통에 넣는다. 차 한 잔 값이다. 이렇게 1년을 모아 연말에 '돼지 잡는 날'이 되면 저금통에서 40만~50만원이 쏟아져 나온다. 차씨는 이 돈을 합천군청에 기부한다. 지난해까지 28년간 누적 기부액이 1200만원을 넘었다.

차씨는 9일 통화에서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합천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 매년 돼지저금통을 키운다"고 했다. 1981년 군청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합천으로 이사 왔지만 남편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일을 그만뒀다. 이후 화장품 외판원 생활을 하며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유지했다. 차씨는 "지역 주민들이 자기 일처럼 사람을 소개해 주고 도와준 것이 고맙게 남았다"며 "찻집을 낸 뒤로는 군민이 찾아준 덕분에 아들딸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1989년 조손 가정에서 자라던 아홉 살 소녀를 수양딸로 삼아 28년째 부모 노릇도 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수양딸이 엊그제도 합천에 내려와 같이 김치를 담그고 올라갔다"며 "배 아파 낳은 큰아들·큰딸이랑 똑같은 내 막내딸"이라고 했다.

차씨는 지역 주민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차 한 잔 값이라도 모아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키운 돼지저금통이 벌써 29개나 됐어요. 합천을 찾는 이들이 많아져 올 연말엔 돼지 두 마리를 잡는 게 작은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