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환자에 7000시간 발 마사지해준 할머니

지난달 12일 서울 동대문구 시립 동부병원 호스피스 병동.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모(56)씨의 거칠고 핏기 없는 발을 심귀남(75)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구석구석 주물렀다. 20여분이 지나자 발에 혈색이 돌아오고 주인 얼굴도 환해졌다. "아유, 우리 아주머니 발이 새색시 발처럼 예뻐졌네."

심씨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 곁을 13년간 지켜온 마사지 자원봉사자다. 열다섯 소년부터 여든 넘은 할아버지까지 그간 발을 맡긴 환자가 500명이 넘는다. 발 마사지에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심씨는 "그동안 가족들 보살피느라, 병마와 싸우느라 고생한 발을 그냥 '정성껏' 주물러 드린다"고 했다.

심씨도 1999년 췌장 파열로 중환자실에 한 달간 입원해 봉사자들에게 발을 맡긴 적이 있다. "퉁퉁 부은 내 발 주물러 주는 사람들이 어찌나 천사 같던지. 나도 건강해지면 저런 천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심씨는 '길어야 5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거짓말처럼 5년 만에 회복됐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대로 2004년부터 발 마사지 봉사를 시작했다.

무표정한 고령 환자도 '눈물 젖은 두만강' 같은 옛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한다고 했다. "앞으로 노래 얼마나 더 들으시겠어. 실력은 형편없어도 불러드리는 거지." 환자 가족을 보듬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한번은 40대 췌장암 환자의 아내가 며칠째 눈물을 참길래 밖으로 불러내 '아기 엄마, 내가 한번 안아줄게요'라고 했더니 펑펑 우는 거야."

병원에서 심씨의 별명은 '날다람쥐 할머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서다. 이 병원 최장기·최고령 봉사자인 심씨는 지금까지 약 7000시간 동안 환자를 보살폈다. 지난해 말엔 동대문구청장 표창을 받았다. 병원 내부 규정은 봉사자 정년을 65세로 제한하고 있지만 심씨는 예외다. 자택에서 병원까지 매일 한 시간 반을 걸어 다니며 챙긴 건강 덕분이다. "내가 건강해야 환자도 더 잘 챙기죠. 나이 먹어도 봉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