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의 갑질… "해외 수수료 0.1% 더 내라"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글로벌 카드사 비자(VISA)가 올해부터 국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해외이용 수수료를 1.0%에서 1.1%로 일방적으로 인상했다. 이에 국내 카드업계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비자의 갑(甲)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자카드는 지난 2009년에도 해외이용 수수료를 1.0%에서 1.2%로 인상하려 했다가 국내 카드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보류했으나, 이번엔 카드사들의 반대에도 수수료 인상을 강행했다.

해외이용 수수료는 국내 신용카드 고객이 해외에서 카드로 결제할 때 비자 등 국제카드사의 결제망 사용 대가로 내는 수수료다. 해외이용 수수료가 1%일 경우 해외에서 카드로 100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물건값의 1%인 1만원을 카드사에 수수료로 내는 식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거주자의 해외 카드 이용금액은 132억6000만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 이 금액의 약 1% 수준인 1억3000만달러(1500억원)를 해외이용 수수료로 비자, 마스터카드, 은련카드(유니언페이) 등 국제카드사에 지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자 10%, 은련 33% 올려

카드 해외이용 수수료 싸움에 불을 붙인 건 비자카드다. 비자는 작년 5월 국내 카드사에 "10월부터 해외이용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가, 국내 카드업계의 저항에 부딪혀 인상 시점을 올해 1월로 늦췄다. 국내 전업 카드사 8곳은 "비자카드의 일방적 수수료 인상은 불공정하다"며 작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업계 3위인 은련카드도 비자카드를 따라 그간 면제해 온 해외이용 수수료(0.6%)를 작년 12월부터 면제 혜택을 없애고, 수수료율도 0.6%에서 0.8%로 올렸다.

국내 카드사는 수수료 인상분을 당분간 각 사가 부담할 예정이다. 비자카드의 경우 종전 해외이용 수수료 1%는 소비자가 부담하되, 인상분인 0.1%는 국내 카드사가 내고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소비자가 이번 인상분을 부담하게 되는 등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점유율 56% 차지하는 비자의 갑질

비자카드의 '힘'은 독과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에서 나온다. 전 세계 카드산업 보고서인 닐슨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글로벌 카드사의 시장 점유율(거래 건수 기준)은 비자 56%, 마스터카드 26%, 은련카드 13% 순이다. '빅3'가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셈이다. 해외 결제망이 없는 국내 카드사의 경우 글로벌 카드사에 해외 결제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자 등 국제카드사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국내 결제에 대해서도 국내 카드사에 수수료를 0.04% 부과한다"며 "카드업계에서 갑 중의 갑"라고 했다.

카드업계는 비자카드가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통보하면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사전협의 방식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내 카드업계가 비자카드와 맺은 계약서에 따르면 국내 카드사는 비자카드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수수료에 맞춰 수수료를 지급하게 돼 있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한국 카드산업이 성장하기 전인 1980년대 초반 맺었던 불공정 계약의 틀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신용카드 시장 포화 상태인 점 노려

국내 카드업계에선 이번 수수료 인상이 한국의 신용카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점을 노린 것이라고 본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아직 현금 결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카드사가 신규로 유치할 고객이 많고, 중국도 해외 카드사가 영업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만큼 확장할 여력이 있는 시장"이라며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미 신용카드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한 만큼, 비자카드가 수수료를 낮춰도 고객을 추가로 늘리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비자코리아는 “이번 해외이용 수수료 인상은 20년 만의 첫 인상”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 모두 수수료율을 인상할 방침이며 일본도 비슷한 시점에 수수료를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단, 카드시장 개방 초입에 있는 중국은 이번 수수료 인상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카드업계는 비자카드보다 수수료율이 낮은 다른 해외카드사 카드 발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비자카드 영향력을 줄여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자카드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지렛대는 소비자의 선택”이라며 “소비자가 수수료율이 높은 카드 대신 낮은 카드를 선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비자 카드의 횡포를 막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