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삼성의 대가성 물증' 잡았나, 분위기로 몰고가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2일 뇌물 공여(供與) 혐의로 소환 조사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법 처리하려면 삼성이 최순실(61·구속 기소)씨 측에 지원한 수백억원의 '대가성'을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특검팀은 이날 이 부회장에게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에게 대가를 바라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하고, 정유라(21)씨의 승마 활동에 80억원을 지원하도록 지시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중요 고비였던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고, 그 대가로 최씨 측을 지원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이날 조사에서 특검팀과 이 부회장 측 변호사는 삼성이 최씨에게 지원한 돈의 성격이 '뇌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팽팽한 법리 대결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날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 정유라씨 지원을 직접 실행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도 소환 조사했다. 이 부회장과 대질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 부회장이 혐의를 부인해도) 관련 증거가 있을 경우에는 조사와 기소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 자리에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는지 여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와 뒤이은 특검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과 국민연금 등이 삼성 합병을 지원했고,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세 차례 독대(獨對)에서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을 주문한 사실 등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문제는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씨 등에게 삼성 합병 지원 등을 부탁했는지 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뒷거래'가 성립하려면 삼성이 뭘 요구했는지가 분명해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삼성 측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한 지원일 뿐 삼성의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점을 겨냥한 방어 논리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하려면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 특검 주변에선 단순 뇌물죄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단순 뇌물죄는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만 입증하면 되고, 박 대통령의 직무 범위는 국정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이 경우 삼성의 최씨에 대한 지원의 실질적 이득이 박 대통령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특검 주변에선 2015년 7월 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두 번째 독대에서 박 대통령이 "한화로부터 승마협회를 넘겨받았으면 적어도 한화만큼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 삼성은 그 정도도 못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했고, 그 직후 이 부회장 지시로 삼성이 내부 회의를 가진 뒤 본격적인 최씨 지원에 나선 것에 '사후(事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싸움"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단순 뇌물죄는 대가성이 다소 포괄적으로 해석되지만, 그러려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경제 공동체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면서 "특검이 위증에 횡령·배임까지 여러 가지 혐의를 적용하려는 걸로 봐서 뇌물죄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