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목소리로 치유하는 DJ 허윤희

매일 밤 10시에 부드럽게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다. '공기 반 소리 반'이랄까. 첫 마디 듣는 순간 마음이 착 가라앉는 마법. CBS FM '꿈과 음악 사이에' DJ 허윤희(36)가 주인공이다. 인터넷에는 감탄사가 넘쳐난다. '나긋나긋 속삭이는 듯 촉촉한 음색' '밤에 더없이 어울리는 짙은 커피향 같은 음성' '딱 한 번 실수로 주파수 맞췄다가 다시는 헤어나지 못했어요' '태교를 허윤희씨 목소리로 했어요'….

그가 이 프로그램을 맡은 지 10주년을 맞았다. 수년째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지켜왔다. 지난 6일 서울 목동 CBS 스튜디오에서 만난 허윤희는 늘씬하고 이목구비 시원한 미인이었다. "앳된 중학생이 어엿한 직장인 되기까지, 발랄한 여대생이 두 아이 엄마가 되기까지, 긴 세월 함께해준 애청자들이 고맙다"고 했다.

PD도 게스트도 없이 DJ와 작가 둘이서 만든다. 1990년대 가요를 틀고 청취자 사연을 읽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도 화려한 연예인 게스트와 재치 넘치는 토크로 꽉 찬 프로그램보다 큰 사랑을 받는다. '치유의 시간'이라는 고백이 많다.

"PD 바뀔 때마다 프로그램 색깔 바뀌는 걸 청취자가 원하지 않더라고요. 게스트도 초대해봤는데 청취자가 별로 반기지 않았어요. 출연자끼리 대화 나누느라 정작 청취자가 소외되는 프로그램이 싫어서 제 방송 듣는 분이 많거든요. 양념 다 빼고 잘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하며 10년을 왔지요."

라디오 DJ는 대개 연예인 아니면 아나운서지만 그는 순수하게 DJ가 직업이다. CBS 음악 전문 MC로 선발돼 프리랜서 신분으로 이 프로그램만 진행해왔다. 이름도 낯설고 어디서 본 적도 없으니 목소리를 들으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하지만 그는 방송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라디오의 중요 속성 중 하나가 '환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상상하고 싶어 하죠. 저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이 많은 청취자도 저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마음으로 의지할 수도 있을 거고요."

10년간 가장 큰 변화는 "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청취자는 해답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을 원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단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MP3로 다운받으면 되는데 왜 굳이 라디오를 들을까요. 내가 찾아 듣는 음악과 남이 들려주는 음악이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에요. 라디오만이 가진 감성은 먼 훗날에도 사랑받을 거라고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달콤한 꿈을 꾸다 깨어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