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같이 다녀도 혼자이게 만드는 마술을 지녔다. 곁에 누군가 있어도 없는 듯 다니는 게 여행이다. 혼자 떠나는 순간 모든 것으로 부터 떨어져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대부분 사람은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다. 그런 풍경은 오래도록 긴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아려오게 만들기도 한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는 나라다. 당연히 바다가 없으니 소금을 만들 수 없는 나라라 생각하겠지만 라오스에서도 소금은 만들어 지고 있다. 라오스의 소금은 암염이다. 먼 옛날 라오스가 바다였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작은 마을에 우물을 팠더니 소금물이 나다. 지하 200m에서 솟아 오르는 소금물을 퍼 올려 그 때부터 장작들을 때서 증발을 시키고 소금을 만들고 있다.
그 마을에서 제일 먼저 만난 풍경은 하얀 교복을 입은 초등학교 아이들이었다. 우리로 치면 일학년이나 이학년쯤 되는 아이들인데 이 곳의 평균 키가 우리보다 훨씬 더 작으니 어쩌면 그 보다 더 높은 학년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이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진흙으로 다져진 마당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 일행을 ‘안녕하세요?’란 말로 맞았다. 분명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대 열두시부터 두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처럼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는다든가 아님 급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를 간다. 그러니 그 아이들 점심시간인 탓에 집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란 인사말을 들었으니 분명 기뻐해야 되겠지만 그 아이들의 눈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은 사라졌다. 뭔가 간절히 원하는 눈망울이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 다녔다. 맨발의 한 여자 아이는 ‘대~~ 한 민국’을 연신 외치며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과자를 얻기 위한 거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곳을 찾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과자를 주어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주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는데도 간절함이 가득 담긴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애써 그 눈망울을 뒤로하고 버스에 오르려다가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쿵하고 소리 내며 내려앉다. 작은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자전거 앞쪽에 바구니를 매단 자전거를 타고 앉아 있던 소녀였다. 사탕을 얻으려는 아이들을 한심한 듯 바라보다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민망한 얼굴을 아래로 숙여버렸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6·25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 온 미군만 보이면 쫓아가 ‘헬로우 기브 미 찹찹’ 이나 ‘껌 기브 미’를 외치던 그런 시절 말이다. 대부분은 ‘깟 뎀, 께라이 히어’ 어쩌고 하면서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그 크고 긴 팔을 휘두르며 매몰차게 아이들을 내몰았다. 어쩌다 마음 좋은 미군이라도 만나는 날은 쵸코렛이며 껌 등을 받아들고 개선장군처럼 입이 함박만 했던 그 시절. 그런 나라가 어느 덧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라오스라는 나라는 지금 막 일어나는 나라다. 어디가나 도로를 닦는다거나 건물을 짓는다거나 하는 공사판이 보인다. 지금은 비록 우리의 과거처럼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나라지만 곧 잘 사는 나라로 바뀔 거라 생각한다. 비록 공산주의 국가라 해도 버스 타려다가 만났던 체면을 알고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소녀 같은 아이가 라오스 곳곳에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변변한 간식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해 사탕 한 알, 비스켓 한 개를 얻기 위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눈망울 잔상이 너무 길어 슬프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것. 언제 어디를 가나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을 본다. 사람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먼 훗날 내가 죽어 하늘에 올라가면 보고 싶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모 방송의 도깨비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 이승에서의 기억은 다 잊어버릴까? 어느 쪽이든 만날 수 없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한 번만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