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넌 어디서 왔니

"목걸이는 왜 안 하고 왔어요?"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15회에는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동주(유연석)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목걸이를 왜 걸고 다니지 않느냐며 윤서정(서현진)에게 따지듯 묻는다. 시청자들도 이제 안다. PPL(Product Placement·간접 광고)하는 목걸이가 클로즈업될 차례라는 걸. 하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고 목걸이는 방송이 끝난 뒤 28초짜리 에필로그에서 등장한다. 액세서리 브랜드 '아가타 파리' 제품이다.

드라마가 히트하면 어김없이 PPL 논란이 벌어진다. 광고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드라마 속 별도 영상으로 제품을 보여주는 방법이 등장했다. PPL이 드라마 촬영지나 주인공의 직업을 결정하기도 한다. 드라마 제작의 필요악이라는 PPL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질까.

PPL은 광고주와 드라마 제작사의 줄다리기다. 보통은 제작사가 전문 대행사를 통해 광고주에 제안하지만 '딱 봐도 되는' 작품은 광고주가 먼저 움직인다. 공유가 4년 만에 드라마 주연으로 돌아온 tvN '도깨비'는 캐나다 관광청이 먼저 PPL을 제안했다. 캐나다 관광청 한국사무소 이영숙 대표는 "도깨비가 900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의 배경이 필요했다"며 "촬영지 퀘벡이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 점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해외 촬영지를 PPL하는 경우 별도 광고비 없이 제작진의 항공비·체재비와 현지 보조 출연 인력, 차량·장비 등을 지원받는다. 제작진 입장에선 현금을 직접 받지 못해도 그만큼 제작비 절감 효과가 있다.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이국적 풍경도 얻을 수 있다.

줄다리기의 역학 관계는 배우와 작가의 이름값에 따라 달라진다. 출연진·제작진, 대략의 줄거리만 나온 상황에서 'PPL 영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단서다. 배우뿐 아니라 작가도 팬이 생겨나면서 작가의 힘이 커지는 추세다. 요즘 방송가에서는 김은숙·박지은 작가를 최고로 꼽는다. 도깨비를 비롯해 '푸른 바다의 전설' '태양의 후예' '프로듀사' 등 광고주들이 줄을 섰다는 드라마가 이들의 작품이다.

PPL은 등장인물의 직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인공이 특정 직업을 갖고 있으면 관련 제품이나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 특히 배우를 전속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들이 적극적이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 화면을 홍보에 활용할 때 초상권 분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다. 작년 11월 종영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 아이유는 화장품 판매원이었다. 이 드라마에는 아이유가 모델인 화장품 회사 '아이소이'의 로고와 제품이 매장을 배경으로 여러 차례 나왔다. '도깨비'에서 공유는 가구 회사 실소유자로 나온다. '일룸'이 메인 협찬사가 된 까닭이다.

광고비는 노출 빈도나 분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많게는 7억~8억원까지도 가지만 제품 하나의 PPL 금액이 10억원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 제품을 한 번 노출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기도 하는데, 비교적 편차가 적은 커피 전문점 매장 노출이 통상 1회당 2000만원 정도다.

최근에는 PPL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PPL은 광고주가 자기 제품이 얼마나,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 수 없다"며 "한때 서로 PPL을 하려고 나섰던 커피 전문점, 패스트푸드와 같은 업종도 지금은 경쟁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